- 덕분에 저녁 잘 먹었습니다. 식당을 하셔도 되겠어요.
- 아닙니다. 저..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이 힘들고 지치셨겠지만, 오늘 밤에 마당에서 잠시 불멍을 할 예정입니다. 괜찮으시면 잠시 쉬시는 것도 어떠실까 합니다.
해진은 조심스레 민우에게 말했다. 주방에서는 수인의 설거지 소리가 들린다. 해진은 어머님을 잃은 민우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떠난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아서일까 민우의 지친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시원을 떠나던 날 주인아주머니가 챙겨주신 반찬이 떠올랐다.
고향집에 내려와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다 생각 없이 꺼내어 허기진 배를 채운 반찬에 해진은 울컥했었다. 아버지를 잃은 서러움도 있었지만, 누군가 자기를 걱정하고 위로해 주려 애쓰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진은 그 반찬으로 몇 끼를 든든하게 채우고, 몸을 움직였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집안을 쓸고, 과수원을 돌봤다. 해진은 타인에게 받은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다. 어떤 것이 도움이 될지 잘 알지 못했지만, 커피라도, 따스한 차라도 한 잔 내어드리고 싶었다.
오늘의 불멍은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해진과 수인에게 불멍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난 여가생활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장작을 태우는 단조로운 행위였지만, 그들에게 불꽃은 매 순간 다른 모습이었고, 그에 따라 매번 다른 이야기들이 그들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지난 대학 시절의 이야기, 서울에서의 추억들, 민박집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쉼 없이 쏟아내어도, 내일 또 불멍을 할 때면 또 다른 이야기들이 샘솟았고, 그들에게 불멍을 준비하는 일도 매번 설레는 일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해진은 천천히 신경 써 장작을 쌓았다. 아버지를 보내고 처음 이곳에 앉아 불을 피우던 때가 떠올랐다. 어떻게 장작을 쌓는지도 몰라 연기만 잔뜩 내고는 콜록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나중에는 연기에 우는지, 그리움에 우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서럽게도 울기도 했었다.
여기 과수원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소리 내어 울지 못했을 것이다. 해진은 정말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울다 지쳐 몸이 늘어질 때까지 모든 슬픔과 그리움을 쏟아 내었다. 장작은 다 타버려 불꽃은 사그라들었지만, 화롯불은 여전히 뜨거움을 쏟아내고 있었다. 까만 재가 덮여 불빛을 잃었어도, 조금만 뒤적이면 빠알갛게 여전히 뜨거움을 품고 있던 재가 남아있었다. 해진은 그 온기가 마치 아버지 같았다. 그래서 더 서럽게 울었다.
- 나오실까?
- 그러게... 나오시면 좋을 텐데.. 그냥 여기서 뜨거운 차 한잔만이라도 하고 가셨으면 좋겠다. 남일 같지가 않네.
- 오빠는... 괜찮아?
- 나? 뭐.. 그래도 조금씩은 괜찮은데, 많이 그립지. 그동안 죄송했던 일만 생각나니까. 평소에 좀 잘할걸.. 매일 후회가 한 가지씩 생각나고 그래. 그니까 너 전화 좀 자주 드려 집에.
- 어? 그.. 그럴게.. 아니 말 나온 김에 집에 전화 한 통 하고 올게. 괜히 마음이 그러네.
수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마당은 더 고요해졌고, 타닥타닥 장작이 터지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채웠다. 공기의 흐름에 일렁이는 불꽃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 잠시 앉아도 되나요?
해진은 반가운 마음에 빈 캠핑의자를 건네고, 민우는 조심스레 앉아 불꽃을 바라보았다. 아까 보지 못한 작은 상자를 소중하게 들고 나왔다.
- 이게 남은 마지막이에요. 그런데 도저히 못 열어보겠어요.
별것 없는 작은 택배 상자 같았다. 온라인으로 작은 물건을 주문하면 오는 평범한 택배 상자였다. 시간의 흔적이 있어 모양은 흐트러졌고, 더 누렇게 변한 흔적들도 있었다. 그 박스 한쪽 구석에 "아들"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테이프로 둘러져 살짝 감겨져 있었다. 봉인하려기보다는 흐트러지는 박스가 부서지지 말라고 붙여둔 것 같았다. 남자는 캠핑 의자에 앉아 박스를 손에 들고는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 제가 하는 일이 죽음과 가까이 있는 일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죽음의 흔적을 치우는 일이에요. 주로 고독사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러면 안 되는 건지 너무 잘 알아요. 떠난 분들도, 남겨진 사람들도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항상 곁에서 보고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나 봐요. 그러면 안 되었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되었는데요.
민우는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고, 숨도 쉬지 않은 것처럼 차를 몰고 고향엘 도착했다. 영안실에 도착하기 전 경찰관이 짧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신 것 같다고.
민우는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질 수 없었다. 어머니인 줄 알지만, 두려웠고, 무서웠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외면하며 눈물을 삼켰다. 슬프고, 후회스럽고 어쩔 줄 몰라 울부짖으면서도, 어머니의 얼굴을 차마 쓸어내릴 수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고향집에 다다르자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결코 내 집에서는 맡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그런 냄새였다.
- 지병이 있으셨나 봐요. 식탁 근처에서 쓰러져 계셨는데 테이블 위에 약봉지가 많이 있더라고요. 약을 드시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지난 명절 가슴이 두근거려 병원을 다녀왔노라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검사가 비싸서 약만 처방받았다 하시기에 검사비 드릴 테니 검사 좀 받으시라고 살짝 짜증을 냈다. 아마 어머니는 검사를 받지 않으셨을 거다. 민우는 어머니에게 검사비를 드린 기억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직접 병원 예약도 하고, 모셔다 드리기도 했어야 했다.
- 민우야.. 괜찮아?
- 어? 실장님.. 여긴 어떻게..
- 어쩌다 소식을 들었어. 대충 상황도 알고, 우리가 해줄 게 이런 것 밖에 없을 거 같아서 먼저 와봤어.
실장님은 나름의 연줄이 있었다. 경찰에 고독사 같은 일이 접수가 되면, 유족만큼 빠르게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어둠의 경로가 있었다. 그러면 실장님이 방문해 그 일을 맡아 오는 것이다. 이런 일 자체가 소수이기도 하고, 피해자의 경우도, 경찰의 경우도 현장 자체를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에 그렇게 방문하는 경우 대부분 우리가 일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어머니의 소식도 그렇게 들었을지 모른다. 아까의 전화는 나보다 실장님이 먼저 그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고향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계셨는지. 아니면 보호자 연락처가 낯이 익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머니 장례를 치르는 동안 회사 직원들은 집을 정리해 주었다. 깔끔하게 살아온 분이라 버릴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냄새... 그 외로움의 냄새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살림은 처리해야 했다. 가구들. 소파며, 이불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다시 사용할 수가 없다. 아무리 추억이 담겨 있는 것들이라고 해도. 한 번 베어버린 외로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발인을 마치고 어머니의 영정을 안고, 화장터로 떠나기 전 잠시 드른 어머니집은 더 이상 같은 집이 아니었다. 벽지까지 모두 깨끗하게 제거되어 버린. 어머니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 그저 하나의 공간만이 남겨져 있었다.
- 민우야. 너도 알겠지만, 남겨둘 수 없었어. 그래서 개인적인 의류며, 물건들은 어쩔 수 없이 폐기했고, 혹시 모를 것들은. 그래도 네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은 저기 박스에 넣어뒀으니까. 시간 되면 확인해 봐.
민우는 박스를 쓱 훑어보았다. 어릴 적 찍었던 앨범 몇 권들과, 통장과 도장들, 어머니의 몇 개 없는 금붙이 장신구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택배 박스가 있었다.
무얼까 확인하려는 데. 장례지도분이 화장터 예약시간을 체크하시며 곧 출발해야 함을 알려주셨다. 민우는 얼떨결에 상자와 영정을 함께 들고 이동했다.
어머니를 납골당에 봉안하고 나서야 민우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차에 올라 긴 한숨을 내뱉고 시동을 켜서야 조수석에 놓여 있는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들었을까? 무엇이 들었기에 실장님은 이 상자를 남겨두었을까. 민우는 상자 안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쉽게 열어볼 수 없었다. 무언가 어머니와 자신을 이어 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 택배 상자 열듯 상자를 확인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상자를 흔들어 보니 무언가 상자 벽에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해진은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어둠이 뉘엿뉘엿 사방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시골의 밤은 소리 없이 빠르게 차오른다. 해진은 몹시 피곤함을 느꼈지만, 빨리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두세 시간은 더 운전을 해야 한다. 며칠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기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크게 굽어진 도로를 돌아 나서는 순간 저기 앞에 간판이 보였다.
나무판에 페인트로 쓴 민박집이라는 간판에 민우는 무심코 차를 멈췄다. 주변을 둘러봐도 민박집은 보이지 않았다. 과수원의 초입에 고개를 들어보니 정상쯤에 집이 한 채가 보였다. 보도블록을 따라 방울 조명이 걸려 빛을 반짝이는 모양새를 보니 어쩌면 저곳이 민박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해야 할까? 그냥 계속 운전을 할까 잠시 주저하는 틈에 민우의 시선에 차임벨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세상에 이런 걸 사용할까 싶었다. 설마 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에 벨을 눌러보았다.
' 울린 걸까? 이게 아니면 그냥 운전해서 가지 뭐'
민우가 망설이는 순간 저 위 집 쪽에서 플래시 불빛이 깜빡거렸다. 민우는 가볍게 손을 들었고, 잠시 후 젊은 두 남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