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아이를 임신했을 때 양산에 땅을 알아보러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룡마을에 이백평 가량의 넓은 땅을 샀다. 우리 부부 인생에 가장 무모한 최초의 투자였다. 남들은 한창 비트코인과 테슬라 주식에 열중하던 때였다. 우리는 독자적인 길을 가겠노라 호기롭게 땅투자를 시작했고 있는 돈 없는 돈을 몽땅 긁어모았다. 반년동안의 토지 임장과 땅매매계약, 각종 세무신고와 농막 설치 등 부수적인 일을 마무리 짓기까지 일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렵사리 일군 주말 농장은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전원생활의 낭만이, 다음으로는 사계절 이어지는 잡일과 관리의 수로고움을 경험했다. 30대 도시 남녀 둘이서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리한 투자였다고, 현실을 모르고 너무 큰 일을 덜컥 저질러 버렸다고 지난시간 참 많이 다투었다. 이 땅을 잘 가꾸기 위해서 작은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 열매의 씨앗종자 하나에까지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누가 귀농은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했나. 누가 최고의 투자는 땅이라고 했나. 엎질러진 일에 탓할 대상을 찾았으나 자승자박이었다. 의지와 실행력하나는 끝내주는 남편은 직접, 홀로, 컨테이너 농막을 짓고 내부공사와 화장실, 수전, 배관 공사를 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험난하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은 그가 했으나 한마음으로 애태우고 골머리를 앓은 것은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말육아는 햇살이 정면으로 내리쬐고 산 아래 강이 굽어 보이는 곳, 우리의 농막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일과였다. 아이들은 서룡마을에서 걸음마연습을 했고, 아빠가 구워주는 마시멜로우와 고기를 먹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인원이 더 늘어났고 우리는 친구들과 부모님을 자주 농장으로 모셨다. 한낮에 구슬려 땀흘리고 일한 뒤 저녁에 먹는 고기는 기가 막혔다. 돌산을 깎아 필지를 만든 이곳은 처음에는 황무지였으나 우리 가족의 손길이 닿으면서 소박한 가정의 안락한 주말쉼터가 되었다. 고구마, 각종 야채, 과일, 꽃나무를 심었다. 아이들은 잘 익은 고추를 땄고 직접 재배한 쌈채소는 싱싱하고 푸르렀다. 나도 생전 처음으로 호박잎, 고구마줄기, 토마토줄기 등 몰랐던 것들을 보고 만지고 경험했다. 언제까지나 낯설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올때마다 마음고생을 하긴 했다. 하지만 주말이 끝나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늘 지난 주말의 농장일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의 고운 모래가 아닌 산에 나뒹구는 뾰족한 돌맹이를 장난감에 싣고 땀을 뻘뻘 흘리며 놀았다. 어디선가 주워온 미끄럼틀을 잔디밭에 세우고 연신 엉덩방아를 찧으며 내달렸다. 첫째아이는 맨손으로 벌레를 때려잡을 만큼의 담력이 생겼고, 우리는 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산짐승의 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들었다. 농막 천장에는 야광의 공룡 스티커를 붙혔고 아이들은 밤새 빔으로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로 영화를 봤다. 좋은 시절이었다.
2023년의 가을, 우리의 기억속에서 이 땅은 잊혀졌다. 급하게 내린 이사결정에 이곳의 관리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급하게 팔 생각은 없었지만 주기적으로 관리는 필요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농막과 마당은 점점 무서운 형태로 변해갔다. 풀은 숲처럼 무성히 자랐고 덩쿨은 제멋대로 길을 텄다. 농막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예쁜 보도블럭도, 아끼던 매화나무도 이제 풀숲에 가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반나절넘게 남편은 풀을 벴다. 초가을은 여전히 더웠고 요즘 바빠서 운동을 못한 남편은 땀을 한바가지 쏟고는 잠이 들었다. 아이들도 만화영화를 보다가 이내 아빠옆에 누웠다. 처음 도착했을때보다는 풀을 많이 베었으나 여전히 할 일이 태산으로 남아있다. 우리 키만큼 자란 풀은 한번 베어 버리고나면 그만이다. 문득 지난 4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살아내고 견디느라 고생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사 모든일이 다 해결될 거라는 어른들말이 어렸을적엔 무책임하게 들렸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어느새 시간은 흘렀고 머물렀던 자리에는 좋았던 일만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란 녀석이 얄밉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만 웃음이 새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