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icult Child', 민감한 기질의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기를 감각에 예민하고 섬세한 결을 가진 사람이다. <예민한 아이를 위한 부모수업>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성인을 위한 기질 체크리스트에서 하는 한 항목을 제외하고 전부 '그렇다'에 답했다. 그 설문에 따르면 나는 '극도로 민감한 기질의 성인'이다. 그리고 첫째아이 서엘이는 내 예상대로 나와 같은 기질의 아이였음을 알게되었다. 서엘이를 잘 양육하기 위해서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이 차고 넘치는 훌륭한 양육지침서인 이 책의 내용 중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자신의 민감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잘 정돈된 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잘 정돈된 집이 민감한 아이들이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주위를 정리하는 걸 좋아했고, 그녀만큼이나 깔끔한 물건들을 선호했다.' 돌이켜 짚어보니 육퇴를 한 후 집안을 정리정돈하고 난 다음 날 아침과 그렇지 못한 날의 서엘이의 컨디션이 확연히 달랐다. 피곤함을 참고 장난감방에 널부러진 온갖 블럭 조각들을 통에 집어넣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에 제자리를 찾아주면 다음날 아이는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가 주로 생활하는 거실 낮은 책상 위를 말끔히 정돈하고 제멋대로 꽂힌 책들을 서가에 정리했다. 한때는 책육아를 한답시고 집안에 책이 널부러져 있는걸 일부러 유도한 적도 있었으나 내 아이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걸 깨달은 후 육아법을 바꾸었다. 우리집 책들은 가지런히 책장에 앉아서 아이들이 꺼내주길 기다린다.
하루에 30분씩 시간을 내어 냉장고를 정리하고 식재료를 소분해서 밀프랩을 하는 중이다. 내 살림의 핵심은 부엌인데 요리와 냉장고정리를 늘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왔다. 언제부터인가 가지런한 살림의 기본은 정리정돈을 넘어선 맛있고 정갈한 식사를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것은 노력으로 채우면 된다는 다소 무모한 성실함이 나의 장점이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요리와 부엌살림을 대하니 재미가 붙었다. 늘 하던 몇몇 메뉴의 맛도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지고 손도 빨라졌다. 머리로 다음씬을 상상하고 맛을 대충 가늠하면서 요리하는 낯선 내 모습이 어지간히 기특하다. 밥상차리기는 이제 나의 일, 아이를 잘 길러내는 일에 무엇보다 중요한 최전선의 과업이 되었다. 저녁 설거지가 끝난 후 주방을 마감하면서 식초를 넣은 알콜물을 칙칙 뿌려 후드 안쪽을 닦았다. 어느 살림유투버는 매일 저녁 주방 후드를 빼서 안쪽까지 한번 쓱 닦아주는 걸로 하루를 마감한다기에 나도 따라해본 터다. 마음먹기에 따라 살림이 다정해질 수 있구나. 손떼묻은 나의 살림,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