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낮은 벤치에서 쉬었다. 도서축제대전을 한다기에 아이들과 부스 몇군데를 돌았더니 발바닥이 욱씬거렸다. 요즘 살이 오른 통통한 내 허벅지를 배고 남편은 낮잠을 잤다. 출판사부스에서 십프로 할인을 받고 산 거북이책이 마음에 들어서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이리 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책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몇 바퀴 타더니 이내 각자의 놀이에 빠져들었다.
첫째아이는 룰렛을 돌려서 받은 예쁜 엽서를 도화지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울퉁불퉁한 동그라미를 여러개 그려넣으며 스토리를 만들어 조잘거렸다. 이건 주활생 괴물이고 갑자기 노랑색 똥 괴물이 나타났는데 모두가 파란색 괴물한테 잡혀먹혔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평소에는 진지한 그 아이가 잇몸을 드러내고 실없게 웃는 건 귀한 순간이다. 상상의 나라로 계속해서 뻗어가는 본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는지 아이는 한참동안 나를 붙잡고 속사포로 알 수 없는 동화를 만들었다. 아이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비누방울처럼 퐁퐁 쏘아대며 행복해했다. 선선한 가을바람 덕분일까, 갑갑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탁 트인 자전거길을 내달린 덕분일까, 아니면 색칠공부와 책읽기의 절묘한 콜라보덕분일까?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은 첫째아이를 보면서 육아의 구할은 내 몫이 아니라는 걸 상기했다. 부모의 몫은 일할, 나머지 구할은 렛잇비. 부모가 되니 알아도 모르는척, 답답해도 기다려주는 것이 제일 힘들다. 도와주고 알려주면 쉽사리 해결 될 일에 곱절의 시간을 들여 아이의 시행착오와 뻘짓을 지켜봐주는 인내심은 보통의 노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꾸만 앞서가려는 내게 시어머니께서 자주 하신 말씀이 있다. "서엘이 애미야. 부모는 자식뒤에 따라가는 거다. 한발짝 뒤에 서있는게 부모다. 자꾸만 앞서 가려고 하지 마래이. 서엘이 애미가 아직 젋어서 그러는거 안다. 그래도 이 나이 먹고 보니 부모노릇은 기다려주는게 최고다."
우리 시엄니 또 잔소리하신다고 당시엔 흘려들었던 말이 불혓듯 떠오르는 이유를 안다.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덕분에 나도 조금씩, 비로소 할머니같은 엄마가 진짜 멋진 엄마라는걸 꺠우친다. 열정많고 똑똑한 엄마노릇 몇 년 해보니 그다지 적성에도 맞지 않고 마음도 부대꼈는데 드디어 제 길을 찾은 것이다. 자식을 손주보듯이 한다면 내 품안에 아이들은 얼마나 편안하고 그저 좋을까. 나의 일할은 서 있어 주는 것, 원한다면 손을 잡아주는 것, 힘들면 안아주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한다.
구할의 몫은 렛잇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