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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25. 2022

반찬을 만들며

그러니까 나는 지금 팔팔 끓는 물속에서 몸서리치는 콩나물을 보고 있다. 저녁 반찬으로 아삭한 콩나물 무침과 달큼한 시금치 무침을 할 예정이다. 소고기 안심에 트러플 소금을 솔솔 뿌려 굽고 두부를 잔뜩 넣은 된장국도 끓일 것이다.


감시하듯이 콩나물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일찍 꺼내면 덜 데쳐져 비린내가 날 것이고 늦게 꺼내면 아삭함이 사라질 것이기에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많은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차오른다. 네 가지의 반찬을 어떠한 순서로 효율적으로 완성시킬까에서부터 낮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 다 먹고 어떤 식으로 치울지, 이 냄비 속으로 들어가 콩나물과 함께 온천을 즐기는 상상 등 별의별 생각들이 테이프 커터기처럼 드르륵드르륵 돌아간다. 귓가에선 아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웅웅거린다.




어제는 슬픈 일이 있었고 그저께는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은 어떤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내일은. 반찬을 만들다가 왜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이 또 있다면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거죠?’




콩나물을 무치고 시금치를 무친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된장국은 뜨겁게 끓고 있다. 부엌일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다. 반찬  가지에 엉망이  주방을 보니 가슴이 아득하다. 이대로 내팽개친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시원한 동작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옷을 한번 탁탁   산뜻한 발걸음으로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뿐한 마음으로 최신호 잡지를 읽고 싶다. 하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선 최선이라는  알기에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는 찬찬히 반찬을 마무리한다.


여전히 맛은 없다. 나에게 요리 시간은 애석하게도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재능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 사살하는 시간. 하지만 사 먹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무언가에는 좋겠지'라고 위안하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반찬을 만든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어떤 상황과 기분에서도 그저 정해진 루틴을 성실하게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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