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지금 팔팔 끓는 물속에서 몸서리치는 콩나물을 보고 있다. 저녁 반찬으로 아삭한 콩나물 무침과 달큼한 시금치 무침을 할 예정이다. 소고기 안심에 트러플 소금을 솔솔 뿌려 굽고 두부를 잔뜩 넣은 된장국도 끓일 것이다.
감시하듯이 콩나물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일찍 꺼내면 덜 데쳐져 비린내가 날 것이고 늦게 꺼내면 아삭함이 사라질 것이기에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많은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차오른다. 네 가지의 반찬을 어떠한 순서로 효율적으로 완성시킬까에서부터 낮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 다 먹고 어떤 식으로 치울지, 이 냄비 속으로 들어가 콩나물과 함께 온천을 즐기는 상상 등 별의별 생각들이 테이프 커터기처럼 드르륵드르륵 돌아간다. 귓가에선 아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웅웅거린다.
어제는 슬픈 일이 있었고 그저께는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은 어떤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내일은. 반찬을 만들다가 왜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이 또 있다면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거죠?’
콩나물을 무치고 시금치를 무친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된장국은 뜨겁게 끓고 있다. 부엌일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다. 반찬 몇 가지에 엉망이 된 주방을 보니 가슴이 아득하다. 이대로 내팽개친 채 밖에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시원한 동작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옷을 한번 탁탁 턴 후 산뜻한 발걸음으로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뿐한 마음으로 최신호 잡지를 읽고 싶다. 하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선 최선이라는 걸 알기에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는 찬찬히 반찬을 마무리한다.
여전히 맛은 없다. 나에게 요리 시간은 애석하게도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재능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 사살하는 시간. 하지만 사 먹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무언가에는 좋겠지'라고 위안하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반찬을 만든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어떤 상황과 기분에서도 그저 정해진 루틴을 성실하게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