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집 앞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분명 눈앞에 집이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혹시 여기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나 보던 도깨비 언덕 같은 곳이 아닐까? 아니면 문과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성이론 어쩌고 저쩌고의 사차원 세계 진입?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찌푸린 하회탈 같은 얼굴로 거기가 거기 같은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결국 15분 거리를 한 시간 동안 돌고 돌아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숨을 헉헉 내쉬며 게임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야! 나 저기 사거리 앞에서 길 잃어서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하고 얘기했더니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돌아보지도 않고 뒤통수로 비웃음을 날렸다.
살다 보니 나만큼 길치인 사람을 또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같이 사는 남자다. 하지만 남자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는 법이 없기에 이실직고하기 전까진 전혀 길치인 줄 몰랐다. 그렇다. 그는 길치이긴 하지만 쫄보는 아니었다. 반면 나는 조금만 길이 어긋나도 불안 가득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기에 누가 봐도 쫄보에 확신의 길치였다.
여하튼 자타공인 쫄보 길치가 운전을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라는 훌륭한 도구도 있고, 운전 기술에 방향감각이나 운동신경은 무관하다는 다수의 조언을 듣고 용기를 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운전을 못해 생기는 치사스러운 상황과 불편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어 자존심을 걸고 운전을 꼭 마스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단기 암기 실력이 좋고 엄마 피셜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나는 역시나 달달 외우는 필기시험은 가볍게 만점을 받았으나 도로주행에서 그만 강사님을 '버럭'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결국 웃돈을 더 주고 추가 강습을 여러 차례 받고서야 간신히 면허를 획득했다. 하지만 이대로 도로에 나가는 건 미친 짓이라는 주변 여론과 안전제일주의 쫄보 성향으로 개인 강습을 20시간 더 받고서야 겨우 혼자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모든 강습이 끝나고 조수석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어지자 불안해진 나는 일단 운전 경력 30년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베테랑 운전사인 엄마의 레퍼토리는 늘 한결같다. 갓난아기였던 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두꺼운 문제집을 밤낮없이 달달 외우다시피 해서 필기시험을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했으며, 아빠가 출근하기 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혼자 차를 끌고 나가 연습해서 운전은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너도 그렇게 하라'가 요였다. 하지만 엄마, 나는 엄마같이 호기로운 부류의 사람이 아닌걸요.
홀로 주행을 앞둔 밤. 내일 주행할 코스를 A4 용지에 그려 어느 지점에 신호등이 있고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지 전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허공에다 운전대 돌리는 시늉을 해보았다. 어느 가을날 거리 공연에서 보았던 팬터마임이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다 잠까지 설치며 맞이한 결전의 날. 초보운전 스티커보다는 종이에 무심하게 휘갈겨 써 붙이는 게 더 효과가 좋다는 말에 A4 용지에 커다랗게 '초''보'라고 써 누런 박스테이프로 대충 붙인 다음 멍하니 길을 나섰다. 드르렁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고 앞으로 나가자 종이 귀퉁이가 바람에 나풀나풀 하찮게 휘날렸다.
예상외로 순조로운 주행이 시작되었다. 동네를 부드럽게 한 바퀴 도니 쓸데없이 자신감이 붙었다. 수면부족과 지나친 긴장감으로 컨디션이 이판사판 몽환적인 상태이기도 했다. 올~이게 되는구나, 별 것 아니네 풋, 조금 더 해볼까 하며 허세를 부리며 좀 더 과감하게 액셀을 밟았다. 1차선, 2차선, 3차선, 4차선 점점 차선이 늘어났다. 앞, 뒤, 옆 할 것 없이 사방팔방으로 차들이 씽씽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할수록 더 혼미해졌다.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 지점에서 실패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직전을 하고, 내비게이션 안내보다 한발 늦은 인지력으로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삽질을 거듭했다. 뒷 차가 경적이라도 울리면 정신이 아득해져 비상등은 까맣게 잊고 웅얼거리기만 했다. "아 예예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요. 미안하다!!! 흐흡..흑."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입술 사이로 불안, 긴장, 걱정이 뒤섞인 욕 비스 무례한 것이 새어 나왔다. 목구멍을 열고 시원하게 쌍욕을 못한 건 사고가 났을 경우 블랙박스를 제출해야 되는데 거기 녹음된 자신의 걸쭉한 욕을 듣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으이그, 내가 이렇다. 속으로는 온갖 쌍욕을 해대도 겉으로는 교양을 차리고 싶은 모순덩어리.
이 순간 자동차는 세상을 바꾼 최고의 발명품이 아니라 치워버리고 싶은 쓸모없는 고철 뭉치일 뿐이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처음으로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뒷 유리에 붙은 '초보' 종이는 바람에 나부끼다 테이프 가장자리를 따라 쭈욱 찢어져 너덜너덜거리고 있었다. 그 꼴이 흡사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길고 지루한 과정이라 생략한다) 다행히도 집에 도착은 했다. 기가 쪽쪽 빨린 고단한 육신을 침대에 올린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다음 날이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 코스를 통째로 외워버린 도서관, 마트, 병원 외에는 갈 엄두가 안 난다. 남들 다 하는 운전을 왜 이렇게나 못하나 싶어 머리를 감싸 안고 자책하며 울부짖길 여러 날.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난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다. 재능이 없다. 길 찾는 재능과 과감하게 돌진하는 재능. 아무리 봐도 쫄보와 길치는 결이 비슷하다. 과학자들이 말하길 길치의 원인은 뇌에서 장소 관련 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들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거라 볼 수 있단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나의 조금 부족한 겁쟁이 신경세포들을 포용하고 여기에 맞는 삶의 방식을 개척해 나가는 수밖에. 이상 쫄보 길치의 운전 모험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