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aria evora - Maria elena)
밥은 많이 먹어도 군것질은 잘 안 했는데, 사십 대가 되니 자주 군것질거리를 찾게 된다. 고루함으로 들어서는 인생의 길목에서 달콤한 무언가로나마 마음을 달래기 위함일까. 사실 체력과 당이 쉽게 떨어지는 나이가 된 것이겠지. 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호주머니 속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넣어 다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군것질거리의 조건은 꽤 구체적이다. 입에 넣었을 때 살짝 작은듯하지만 안정감 있는 부피로 자리를 차지하고, 뒤끝 없는 산뜻한 맛에 적당한 존재감이 느껴져야 한다. 바스락거리는 오로라 홀로그램 비닐 포장지로 겹겹이 얇게 쌓여 있고, 포장을 벗겼을 때는 ‘와’하고 작은 탄성이 나올 만큼 귀여운 모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포지타노 레몬 사탕이나 린트 초콜릿을 먹다 요즘 들어 풍선껌을 씹기 시작했다. 졸음방지용 자일리톨이 아닌 군것질을 위한 풍선껌을 내 의지로 내 돈 주고 사는 게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껌을 씹으며 ‘딱 딱 딱딱’ 소리를 잘 낸다. 연속으로 소리 내기, 소리를 작게 또는 크게 내기, 풍선을 작게 분 후 어금니로 터뜨리면서 소리 내기 등 이 분야에 재주가 많다. 어릴 적 엄마가 껌을 씹으며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정말 마음 깊이 부러워 엄청난 껌을 씹어대며 연습한 결과다. 노란색 껍질의 쥬시플래시 껌을 즐겨 씹었는데, 껌이 얇아 씹기도 쉽고 오래 씹어도 다른 껌에 비해 질겨지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초반에 배어 나오는 아주 달큼한 맛도 좋았다. 광고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 당시 티브이에서는 “쥬시 후레쉬~후레쉬 민트~스피아민트~롯데껌”이라는 광고송이 자주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껌 광고를 잘 못 본 것 같다.
나는 아세로라 껌을 제일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향과 맛이 마치 오래된 고속버스 창문에 달려있는 꼬질꼬질한 쑥색 자카드 커튼이나 오랫동안 창을 열지 않아 방향제 냄새가 진하게 나는 택시 안이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가끔 덴버 풍선껌도 씹었는데, 두껍고 질겨서 그리 선호하진 않았다.
아무튼, 다시 풍선껌을 씹게 된 데는 아이의 영향이 크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하교 후 루틴처럼 편의점을 드나드는데 내가 계산하는 동안 꼭 풍선껌을 하나씩 끼워 넣었다. 2+1 행사를 자주 하는 와우 풍선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풍선껌을 씹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마침 입도 심심해서 ‘엄마도 하나 줘봐’해서 얻어 씹은 것이 시작이다. 길쭉한 껌을 꼬깃꼬깃 구겨 입에 넣고 한 번 두 번 세 번 어금니로 씹었다. 우러나오는 단물이 참 달콤했다. 우리 둘은 껌을 짝짝 씹으면서 허공에 풍선을 불어대며 깔깔 웃었다.
무더위에 모든 것이 지쳐버린 어느 여름날, 점심시간이 지나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을 깰만한 거리를 찾다 운 좋게도 가방 속에 자유롭게 굴러다니던 풍선껌 하나를 발견했다. 심심하고 지루하고 고루한 시간을 담아 꼭꼭 씹었다. 입술을 모아 아주 크고 탱탱하고 동그란 풍선을 불며 생각했다. 인생이 별거 없음을. 나이가 들수록 삶과 입은 심심해지고 있지만, 소소한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일상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풍선껌을 씹으며 느꼈던 행복을 나이 마흔에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가끔 아니 종종 나는 뜨거운 햇볕 아래 풍선껌을 씹으며 카페에 앉아 있기도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풍선껌을 씹으며 돌아다니는 여자의 표정은 무미건조하지만 그녀가 부는 작은 풍선 안에는 소소한 행복들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