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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19. 2022

브라질과 보사노바

brazil - antonio carlos jobim

하루가 너무 힘든 날은 엉뚱한 상상을 하며 현실 도피를 한다. 


그곳은 브라질의 어느 한가한 잡화점, 바깥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더위에 지친 날벌레 한 마리가 하릴없이 가게 안을 윙윙 날아다닌다. 덜덜거리는 낡은 선풍기 한 대가 천천히 돌아가고, 라디오에서는 약간은 늘어지는 리듬의 보사노바가 흘러나오고 있다. 




난 이 잡화점의 일개 직원이다. 잡화점의 주인은 나에게 가게를 맡겨둔 채 긴 여행을 떠난 후 깜깜무소식이다. 가게 안의 축 쳐진 해먹에 누워 몇 번이나 씹어 너덜 해진 빨대로 주스를 들이킨다. 이 상상 속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무료하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해먹에 누워 있거나 먼지 떨이개로 물건 위를 한 번 훑어주고 가끔 오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뿐, 그 어떤 욕심도 없고 목표나 욕망도 없다. 책임질 일이나 가족도 없으며 오로지 하루하루 심심하게 빈둥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인생의 전부다. 퇴근 후나 주말에 종종 솔로 친구들과 함께 펍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 깨끗하게 씻은 후 푹신한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너무 더우니 요리는 하지 않는다. 모든 끼니는 외식으로 해결하고 크게 더러워지지 않는 이상 집안 청소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대충 사는 것이다. 잡화점에서 받은 한 달 월급을 몽땅 투자해 산 흰색 리넨 잠옷(촌스럽지 않은, 고가의 수입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는)과 깃털같이 가볍고 구름같이 폭신한 룸 슈즈를 착용하고 집안을 고요히 거닐어본다. 침대에 누워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스르르 잠이 든다. 지금 내가 가장 꿈꾸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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