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창 밖에는 큰 소나무가 보인다. 4층이라 바로 코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심은 지 2년이 채 안된 나무는 기둥이 가늘고 많이 말랐다. 나무기둥이라기 보단 아주 굵은 가지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식탁에 앉으면 그 나무가 정면으로 보이는데, 넋 놓고 가만히 쳐다보며 ‘저리 말라서 잘 자랄 수 있을까’ 라던지 ‘바람에 똑 부러지면 어쩌지’하는 가벼운 걱정을 하곤 한다.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늘한 나뭇가지 위에는 종종 까치들이 날아와 잠깐씩 쉬었다 가기도 했다.
1955년 레코딩한 글렌 굴드의 연주곡을 틀어놓고 소파에 기대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
나뭇가지 위의 까치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까지는 때때로 있는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얼마 되지 않아 날아가 버리곤 하는데, 오늘은 꽤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거실 창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까맣고 반들거리는 부리로 ‘톡톡’ 노크를 했다. 깜짝 놀라 창문 앞으로 가 ‘왜 그러니?’하고 입모양으로 물어보았다. 까치는 답답하다는 듯이 부리로 한 번 더 ‘톡톡’하고 창문을 두드렸다. 열어 달라는 건가 싶어 살며시 문을 당기니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언젠간 한 번 들어와 보고 싶었어.”
“그래?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어,, 차 한 잔 마실래?
“좋지. 부탁해”
까치는 적당히 정중하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말투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끓여 티팟에 담고 루이보스티 찻잎을 넣어 진하게 우려냈다. 붉은색에 금박 테두리가 멋스럽게 둘러진 웨지우드 찻잔에 차를 한가득 따라 정성스럽게 내주었다.
“마셔 봐, 맛이 괜찮을 거야”
까치는 두 날개를 망토처럼 펼쳐 깃털을 조금 털어낸 후 다소곳하게 날개 끝을 모아 찻잔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였다.
까치는 한참을 차를 마시는데 집중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우리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디오에서는 글렌 굴드의 연주가 끝나고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 3번’이 아름답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바람에 하염없이 휘청이는 소나무가 보였고, 집 안의 사물들은 따스한 빛을 머금고 너무나도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서 사람의 말을 배웠는지, 우리 집을 언제부터 봐온 건지, 어디서 사는지, 주로 무얼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딱히 묻지 않았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늘 그래 왔듯이 뭐가 어떻게 되었건 아무렴 어때 하는 생각이었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덧 차를 다 마신 까치가 정적을 깨며 깔끔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도 끝이 나고 오디오는 플레이를 멈추었다.
“따뜻한 차 고마웠어, 가끔씩 놀러 올게”
군더더기 없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심플하게 다음을 기약하며 까치는 돌아섰다. 그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밖으로 잘 날아갈 수 있도록 거실 창을 활짝 열어주었다. 소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바깥공기는 차가웠다. 까치는 열린 창문 사이로 날개를 펼치고 고운 비단이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날아갔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올 것 같기도 했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쌀쌀맞은 찬 기운이 집안으로 더 들어오기 전에 창문을 꼭 닫았다. 엔틱 장식장 위의 오디오 쪽으로 걸어가 검지 손가락 끝으로 톡 튀어나온 플레이 버튼을 누르니 다시 ‘사랑의 꿈’이 울려 퍼졌다. 나는 낡고 얼룩진 부드러운 하늘색 소파에 깊숙이 몸을 넣어 옆으로 누웠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 3번’은 언제 들어도 따뜻하군 ‘하고 생각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