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쓸모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청소하며 욕실의 약병들을 잘못 건드렸는지 하울의 머리카락이 금빛에서 오렌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울이 욕실에서 뛰쳐나오며 절규합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어!" 절망감에 흐느끼며 하울이 내뱉은 이 과장된 탄식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을 건드립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저는 다른 말이 들렸습니다. <모아나1>의 마우이에게서도 들렸던 그 말, "쓸모가 없으면 살 이유가 없어..." 그 순간 오랫동안 마음 한편을 짓누르고 있던 무게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무언가를 만들고, 돕고, 기여하기를 갈망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선한 영향력,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 코치가 되었고 강의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하울에게는 '아름다움'이, 저에게는 '기여'가 그 증표였습니다. 멈추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바쁘다'라고 말할 때 뿌듯했습니다. 조직에서 내가 기여하는 바가 크고 꽤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삶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가끔, 아니 꽤 자주, 지친 날들이 찾아옵니다. 기여하지 못하는 순간, 혹은 그렇게 느껴지는 날들이 찾아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거나, 의미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시간들. 그럴 때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아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무가치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잉여인간. 그런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떠오른 단어입니다. 세상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된 듯한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습니다. 기여하지 못한다면,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뿌리내림'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물리적 정착이 아닌, 인간이 타인과 공동체, 그리고 삶의 기반과 연결되는 깊은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말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여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삶에 뿌리가 되고, 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잠시 멈춰 선 동안에도 누군가는 나로 인해 안정과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지 않나요? 뿌리가 깊이 연결된 세상 속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도, 멈춤도 모두 과정의 일부입니다. 뿌리내림의 시간은 내가 스스로 쓸모없다고 느낄 때조차도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누군가의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좌절 속에 있을 때 친구의 따뜻한 눈빛이 하루를 견디게 했고, 선생님의 짧은 격려 한마디가 새로운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삶에 깊은 뿌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숨 쉬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우리의 존재로 인해 위로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잠시 멈추어 쉬어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우리의 그늘에서 안식을 찾고 있을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뿌리는 이미 누군가의 삶과 깊이 얽혀있습니다. 쉬고 있는 순간에도, 멈춰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의 일부로서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쓸모와 기여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생산성이나 기여도로 우리의 가치를 재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무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 곳에 서 있어도 흙을 붙잡고, 그늘을 만들며, 생명을 키웁니다. 시냇물은 때로 고요히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주변의 생명체들에게 생기를 줍니다. 들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피어나고, 달빛은 땅을 비추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바람은 목적 없이 불어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잠든 고양이는 아무 생산성이 없어도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압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 누군가 뿌리를 내릴 토양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서로. 마치 들꽃이 피어나고 달빛이 비치듯, 우리는 그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완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