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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악귀>, 인간의 욕망, 생존, 존재의 의미

우린 살려고 했어. 근데 니들은 죽고 싶어 하잖아.

by 윤지원



드라마 <악귀>는 인간의 욕망으로 태자귀를 만들어서 부리는 이야기입니다. 태자귀는 굶어 죽은 아이의 원혼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악귀는 멀쩡하게 살아있던 아이를 의도적으로 굶겨 죽여 만든, 삶에 대한 극한의 의지가 응축된 존재입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극에 달한 순간 죽여서 아주 억울하고 원통하고 악에 바친 귀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악귀가 바로 1958년에 억울하게 죽임 당한 소녀입니다. 이 악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루어줍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어서 자신도 몰랐던 바람까지도 말이죠. 돈을 원하면 돈을, 누군가가 없어지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을 대신 죽여서 없애 줍니다. 증거도 남지 않게. 하지만 대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갑니다.



이 드라마는 악귀의 이야기를 으스스하고 무서운 분위기로 풀어가지만,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과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1958년 한국, 전쟁이 휩쓸고 간지 얼마 안 된 가난한 바닷가 마을. 국가는 재건 단계에 있었고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배와 그물로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급적 생계형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중현캐피탈의 시초인 중현상사가 경영 위기에 처하자, 고비를 넘기기 위해 그들은 인간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합니다. 대대로 태자귀를 만들어 오던 무당 최만월에게 집안에 부를 불러올 귀신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한 것입니다.



중현상사 대표 내외는 현재 시세로 강남 한복판에 건물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한 거금을 동네 이장에게 건넸습니다. 한 가정의 아이를 죽여 귀신을 만드는 일을 묵인하는 대가로 마을 사람들은 그 돈을 모두 나눠 받았습니다. 아이가 사라진 날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굶주리던 마을에 소, 돼지, 닭, 음식들이 끊임없이 실려 왔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열여섯 살 소녀는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풀뿌리를 뜯어먹으면서 악착같이 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현 상사의 의뢰와 마을 사람들의 방조, 그리고 의식을 행한 무당에 의해 7일간 굶주린 채 감금되었고, 결국 억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소녀는 순순히 죽지 않았습니다. 굶주려 힘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무당에게 덤벼들어 그의 비녀를 빼앗아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렇게 부러진 비녀를 죽는 순간에도 움켜쥐었죠. 백골이 된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반쪽짜리 비녀가 소녀의 손뼈 사이에서 발견된 것은 처절한 생존 의지의 증거입니다.



귀신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 소녀는 분노하고 절망합니다. 자신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는데, 정작 살아있는 인간들은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화에서 악귀는 주인공인 구산영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살려고 했어.

먹을 게 없어서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고

친자식까지 팔아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했다고.

근데 니들은 죽고 싶어 하잖아.

구산영 이 계집애도 똑같아.

외롭다고 힘들다고 죽고 싶어 했어.

진짜 외롭고 힘든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인생이란 거를 포기하려고 했다고!

그럴 거면 내가 살게.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살아 볼게.

그러니까 나를 살려 줘.”



그토록 원했던 생,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그 원혼의 사무친 애원입니다.



악귀에게 몸을 거의 뺏길 뻔했던 구산영은 마지막 순간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악귀에게 외치며 선언합니다.



“나는 한순간도 나를 위해 살아 본 적이 없었어.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해 본 적도,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가 본 적도.

나는 왜 누굴 위해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했을까.

어둠 속으로 날 몰아세운 얼굴은 나의 얼굴이었어.

내가 날 죽이고 있었어.

그걸 깨닫고 나니 죽을 수가 없었어.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택할 거야.

엄마를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살아가 볼 거야.”



<악귀>가 전하는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는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라. 살아있음을 감사하라. 생을 귀하게 여겨라.'입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살고 싶어 했던 악귀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강력하게 전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를 보여주죠.



또한 구산영이 마지막 순간에 외치는 말도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나는 누구로 살고 있나? 누구를 위해 살고 있나?' 타인을 위해, 사회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지 묻는 강렬한 질문입니다. 진정한 삶이란 다른 누군가의 승인이나 기대가 아닌,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것. 구산영이 때때로 한강 다리 위에서 떠올렸던 '자신을 놓고 싶어 하는 마음'은 버거움입니다. 몸이 약한 엄마를 위해 엄마 위주의 삶을 살고 있는 구산영. 현실의 무게가 녹록지 않아서 그 짐과 함께 삶을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깊은 곳 속마음을 악귀가 본 거죠.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마음을 알게 된 구산영은 삶이 주는 레몬들을 레모네이드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들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책임지겠다는 마음입니다.



드라마 <악귀>는 또한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부와 성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중현상사(중현캐피탈)의 번영은 무고한 소녀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며, 이는 현대 사회의 많은 성공 스토리가 가진 어두운 이면을 상징합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랄한 방법으로 쌓아 올린 재산 위에서 그들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악행의 시초이자 최종 빌런인 나병희는 악귀를 만들어낸 이후 자신의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습니다. 거대한 부를 이뤘지만 그저 쌓아 놓았을 뿐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은 늘 악귀를 의식하며 불안했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악귀에게 재물로 던져주고,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모두 죽여 없애고 걸어온 피 웅덩이 같은 그 인생에 무엇이 남았을까요?



이 드라마는 악귀, 구산영, 나병희의 삶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경고하듯이 질문합니다.



당신은 정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살아가고 있을 뿐인가?
진정한 삶이란 무엇이며,
당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드라마가 끝난 후 화면을 닫으며 '아 재밌다.'하고 끝낼지, 아니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라는 강력한 미션을 부여받은 주인공으로 시작할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입니다.




** 드라마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나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어떤 욕망이 있나?

* 내가 가진지도 몰랐던,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살고 있나?

* ‘살고 싶다’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느낀 건 언제였나?

* 외롭고 힘든 순간, 나는 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껴본 적 있나?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무엇이었나?

* 나에게 '진정한 삶'은 어떤 의미인가?

* 오늘,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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