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습된 무기력

인격과 영혼의 잠듦

by HyehwaYim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직장 초년의 사수였다. 눈동자는 늘 아래로 향해 있었고, 말수는 적었으며 웃음기가 없었다. 실수를 하거나 부족한 면이 보이면 따로 불러 가차 없이 혼냈다. 때리는 게 난무했던 학창 시절의 선생님을 마주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나의 선배는 '직장은 지옥 같은 곳'이란 걸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사수는 격주에 한 번 꼴로 시험을 봤다. 기본서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원을 나눠 공부를 시켰다. 그 덕분에 주말에는 쉬지 못했고,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를 매기며 나를 평가했다. 잘 본 날도, 못 본 날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이 났다. 이게 나를 위한 거라며, 빨리 업무에 적응하고 인정받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좋게 말할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 나를 죽이고는 그럴싸한 명분을 설계하는 킬러의 농간에 놀아나는 느낌이었다. 참 웃긴 건 나는 그때 했던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고, 심지어 공부했던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관두기로 한 날, 사수는 술을 사준다고 했다. 사과의 한 마디는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술로 무엇을 얻고 우리 사이에 어떤 것들을 풀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평소와 다른 따뜻한 말투로 나를 대했다. 같이 다니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고 했다. 더 잘해 주려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그는 넋두리도 했다. 지방대 출신에 연줄도 없는 내가 살아남으려면 오로지 실력뿐이었다고 말했다. 인정받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려 했지만, 그가 지방대 출신에 연줄이 없는 이유가 나에 대한 괴롭힘과 무슨 상관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바보 같은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여전히 겁이 나서 쳐다보지 못했다.





같은 팀의 어린 직원이 혼이 났다. 회의 장소을 잘못 예약했고, 회의 시간을 길게 잡지 않았다. 팀장은 팀원 모두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잘못을 퍼뜨렸고, 그의 든든한 조력자인 대리들은 앞다퉈 내리 갈굼으로 반쯤 죽여 놓았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몇 번씩 잦은 실수로 팀장의 공분을 샀던 그 직원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공개적인 질책을 받으며 산다. 이제는 같은 팀의 후배들도 은근히 따돌리고, 도마에 올려 심심찮게 무시한다. 악순환의 굴레에 갇힌 그 직원은 일상의 지옥에서 몇 겁을 헤맨다.


윗사람들은 기분이 좋으면 존대를 하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반말로 하대를 한다. 그 직원은 떠맡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 제정신을 찾을 새도 없이 또 다른 실수를 한다. 팀장은 그 친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대리들은 자기들이 제대로 사람 만들어 보겠다며 팀장을 위로한다.


나는 갈팡질팡한다. 그 친구는 실수를 했고, 실수를 했으니 지적을 받는 게 맞는데, 왜 이리 찝찝하고 내키지 않는 마음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마음 한 구석에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실수의 대가로 인격을 바쳐야 하는 것일까. 이미 찢긴 인격을 바닥에 떨구고 짓밟는 이유는 뭘까. 주눅이 들고, 긴장이 되면 익숙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법인데, 얼마나 공포심을 심어줘야 만족할까. 은 실수마다 채찍을 가할 것이 아니라 분명 언젠가는 실수가 줄고, 잘하는 일들이 늘어날 테니 자신감 있게 서두르지 말고 같이 잘해보자고 북돋아줬다면 어땠을까.


한 번 물든 공포는 몸과 마음을 장악한다. 즐겁고 기쁜 날들이 그 시련과 감정을 완전히 보듬지 못한다. 상대를 향한 공포심으로는 존경심을 얻지 못한다. 그를 무섭게 몰아붙이며 얻어낸 결과물은 채찍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핏빛의 상처뿐일 수 있다.


그에게서 나를 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숨을 곳을 찾는 늙어가는 나를 본다. 부디 따뜻한 물로 몸을 덥히고, 포근한 이불속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었으면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