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워한 적은 없지만, 몇몇 사람을 정해 놓고, 이가 갈린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미워해봤다. 미움이란 감정은 참 신기하게도 상한이 없다. 한 번 그런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백 중에 칠십 정도만 미워하면 될 것 같은데, 언제나 백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나는 한낱 평범했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괜찮았을 사람들을 지독한 악마로 탄생시켰다.
미움과 공포는 다른 감정이다. 공포는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한없이 낮아지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반면, 미움은 눈으로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들 것만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공포는 가급적 관계의 선을 지켜가며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일게 하지만, 미움은 관계의 선을 넘어서라도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이게 하려는 본능을 일게 한다. 공포가 압도적일 때는 미움이란 감정부터 다른 어떤 감정도 느낄 새가 없는 반면, 미움이 압도적일 때는 꽤 드라마 같은 희로애락이 함께한다.
나에게는 꽤 밉게 보이는 두 사람과 공포감을 주는 한 사람이 있다. 밉게 보이는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일이 최우선이라 그걸 위해 기꺼이 남을 교묘하게 부리고 가스라이팅 한다. 필요할 땐 갖다 쓰고, 필요 없을 땐 한껏 착한 척을 한다. 그러다 무엇 하나 본인의 일에 흠집이라도 날 것 같으면 재빨리 상황의 구도를 바꿔 책임을 면하기 위한 서사를 쌓는다.
확실히 그런 면들을 보면 영리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마인드로 살지만 그 미운 두 사람끼리는 서로 친하다. 가끔 둘이 합심해서 한 사람을 속된 말로 조지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들이 무참히 짓밟아 놓고 힘들다, 괴롭다며 하소연한다. 그 덕분에 짓밟힌 사람은 조직의 위계와 관계의 맥락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서 먹잇감이 되어 주었고, 급기야 그들이 원했던 동네북으로 임명됐다.
공포감을 주는 한 사람은 늘 속에서 폭탄을 제조하며 사는 인물이다. 겉으로 선하고 여유로운 티를 내며 좋은 사람처럼 굴다가도, 사소한 것에 목숨 걸듯이 꼭지가 돌면 기어이 극에 달한 분노를 표출한다. 옆자리에 있는 나는 가끔씩 뜬금없이 소리치고, 남들 다 들으라며 난리법석 떠는 행동에 가슴이 철렁한다.
그러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할까 봐 나를 따로 불러서는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보인 이유를 설명하며 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명색이 내가 차석이라고 나와의 관계는 돈독하게 유지하고 싶고, 너 정도 되는 나이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밑에 애들 때문에 답답한 나의 상황을 십분 이해하겠지 하는 눈치를 준다.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을 명백한 가해자라고 선언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은 재밌게도 이 공포스러운 사람과 밉게 보이는 두 사람을 끈끈한 관계로 만들어 주었다. 비슷한 사람끼리는 서로 통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 사람은 죽이 잘 맞는다. 업무적으로도 일하는 방식이 닮아 있다. 일단 잘못했다 싶으면 갈구고, 기강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선배는 되고 싶어서 이따금씩 이해가 되지 않는 타이밍에 세상 착한 척을 주기적으로 한다.
내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팀원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반드시 몰래 케이크를 사서 그 케이크 위에 코딩 용지로 출력이 된 생일자의 사진을 끼워야 한다. 또, 생일자를 위한 축하 메시지를 PPT 장표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또 밑에 직원한테 시킨다. 밑에 직원은 안 그래도 시킨 일이 많아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생일 축하 파티까지 몰래, 치밀하게, 얼타지 않고 준비해야 하는 곤욕을 치른다. 이쯤 되면 일상의 괴롭힘이랄까, 아니면 악마의 평범성이랄까. 그것도 아니면 악마의 흔함 증상이랄까. 별 생각을 들게 한다.
공포스러운 사람이 부쩍 나에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말이다. 그러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차장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예전 직장에서는 매일 야근하다 보니 집에도 못 가고 그래서 애도 못 보고 그렇게 살았을 텐데, 여기서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누리고 직장에서도 많은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이다. 여전히 오늘도 팀에서 제일 늦게 퇴근하고 누구보다 오래 일한 이유는 당신이 떠넘긴 모든 일들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인데, 어떻게 나를 응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소름이 돋는다.
묵묵히 일만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긴장 풀고, 여유 있게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나의 모든 여유를 앗아간 죗값을 왜 내가 돌려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더 안타까운 건 매번 우직하게 궂은일을 해내고 있는 다른 팀원에게는 세련되지 못했다고 매번 후배들, 동료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는 것이다. 참, 당신 마음에 들려면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야 하는가.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는 DE&I이다. 이를 위해 자체 교육시스템에 Insider&Outsider Dynamics 강의를 듣게 한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veness)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와 연대로 "Feel free to be myself", 나를 본연의 모습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을 위해 여러 상황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갈등과 맥락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One team을 구축하자는 취지이다.
대단히 이상론을 펴는 것 같지만, 안 해보고 노력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다고 느낄 뿐이다. 조금씩 따르려 하고 실천하다 보면 생각보다 깨닫는 게 많아질 수도 있다. 버젓이 상설 교육으로 개설까지 해 둔 회사도 알고 보면 날 것의 투박함을 고치지 않는다.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달라 코웃음을 친다. 인사와 노무를 십 년이 넘도록 계속해왔는데, 어쩌다 내가 그들에 대해 'Bon hater'가 되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서로 속고 속이는 조직이란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도 본연의 모습을 없애고 해내야 하지만, 최소한의 선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도리는 아이들한테 가르칠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늘 권장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특히 염치에 관하여는 더 그렇다.
People pulse survey라는 진단 결과를 분석해서 몇 십장의 장표를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보고했다. 8개 대표 인덱스를 토대로 근무 환경과 경험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를 살피고 세부 항목에 대한 히트맵까지 빠짐없이 정리했다. 이걸 만드는 내내 이 숫자들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설문들에 응답한 사람들에게 설문의 취지나 그 활용도를 제대로 설명한 적이 있던가, 그리고 이 숫자들이 밝히고 있는 진실과 숫자들에 가려져 있는 진실 사이의 것들을 찾아 내려 노력한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진정으로 조직에 대한 Bon hater로 변하고 있나 보다. 사회 초년생 때 가졌던 회사에 대한 경외심이 직급과 위계로 물든 공포심의 또 다른 측면이었다면, 이제 내가 회사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미움뿐이다.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 늘 박혀 있을 까봐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