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조용히 차를 마실 때만 느낄 수 있는 것
차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차를 마실 때 누군가 함께 마시는 것이 좀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마시는 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함께 생각하고 함께 나눌 때의 기쁨이 더 커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혼자 차를 마실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있다. 나는 이런 특혜(?) 덕분에 혼자 차를 마시는 것도 즐기곤 한다.
혼자서 차를 마시게 되면 첫째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나 스스로에게 주는 것, 그것이 감사함으로 다가와서 참 좋다. 나뿐만이 아니라 흔히들 나 스스로로 살아가기에 쉽지 않은 날들일 것이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 나를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이때 차는 나만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차 앞에서는 누군가의 누구가 아닌 그냥 나만이 마주하게 된다. 차향이 나만을 감싸 안고, 찻물이 내 몸속에 스며들어, 나만을 생각하게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차가 그래서 내겐 더 소중하다.
차를 혼자 마시게 되면 나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지만, 차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또 하나의 선물로 다가온다. 이건 오로지 나와 차만 남겨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차만을 마시고 느끼기 때문이다.
요즘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 아이들을 챙기느라 인터넷으로 장 보는 것조차 몇 번을 거쳐서 봐야 했고, 친구와 카톡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답장하는 것을 까먹기 일쑤였다. 그러니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밤에 깨어있기를 좋아했던 나였기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 사이에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아침에 늘 허겁지겁 일어나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게 참 별로였다. 그래서 올빼미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잠들고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기로 한 거다. 그래서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신세계였다.
밤에 자기 전 차 한잔 마시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이른 새벽 홀로 차를 마시는 것이 그렇게 좋아지기 시작한 거다. 수많은 차들 중에서 개인적으론 허브차를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닌데 새벽녘이면 종종 허브차가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 그날따라 집어 든 것은 로즈메리차. 차를 우리면서 간단한 아침 루틴을 마치고 잘 우려진 로즈메리차를 마시고 숨을 내쉬는데 순간 내가 로즈메리가 가득한 들판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푸릇푸릇하고 싱그럽던 초록의 향과 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눈을 감고 싶어 져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내뱉었다. 흐음~ 하고 내뱉는 숨에 초록초록한 로즈메리가 살랑거리는 느낌이었다. 이젠 들판이 아닌 어느 숲 속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분명 홀로 차를 마실 때만 느낄 수 있는 특혜임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더 잘 느끼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것은 참 소중하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 순간이 온다는 것은 더 소중하다. 내가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눈을 감음으로써 시각을 차단하고 있는 그대로의 향과 맛을 더 세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새벽에 홀로 차를 마시게 되면 이런 기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런 순간이 참 좋아져서 그다음 날 새벽에는 우리 녹차를 울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백호은침을 우렸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에 나에게 주는 차 한잔이 이렇게 선물처럼 다가오리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가슴 가득 차오르는 선물을 받고 나서 시작하는 하루는 여느 때와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좀 더 따뜻하고 힘이 난다. 특히 마음이 힘들 때는 더욱 힘이 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차를 마실 때마다 차가 나를 데려다주는 숲을 만날 생각에 나의 새벽이 설레기 시작했다. 오늘도 차 한 모금에 숲을 만나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