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강렬한 기억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3일간)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완독하고 서평을 남깁니다.치열한 일터에서 고군분투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기에 일독을 권합니다.]
후안옌이라는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我在北京送快递’)라는 책의 저자는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등 중국 여러 도시에서 야간 물류센터 직원, 노점상으로 일하거나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사건과 느낌을 생생하게 풀어썼다. 사회 생활 스킬이 부족한 저자의 회고록을 보면서 사회 초년생으로서 느꼈던 감정이 밀려오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저자의 독서량과 박식함에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 정문앞에 위치한 올리브영에서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 약 7시간 가량 서서 근무하는 캐셔(cashier) 일을 맡았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바를 하려고 바로 근처에 자취방을 얻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시급이 꽤 높았던 편이었음에도 알바비가 대부분 집세로 지출되었다는 걸 고려하면 금전적으로는 이득을 본 게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알바생들과 수다 떨면서 같이 일하고 고객을 응대했던 경험은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었지만 꽤나 즐겁고 값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중국에서 전동차를 타고 다니는 택배 기사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고, 하루에도 배달 기사의 전화를 받고 택배를 수령하는 일이 익숙하다. 비단 중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택배 기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무엇보다 택배일은 스피드가 생명이기에, 추위와 더위에 견디며 위험한 길거리를 질주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다.
내 짧았던 지난 알바 경험에 비춰보면, 힘겨운 노동 현장에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반추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일을 경험하지만, 그저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를 하고, 직업의 의미를 반추해보기에는 바쁘고 고단할 뿐이다. 일에 따른 보상에 불만족하며 단지 숙명으로 치부하거나, 본인이 그저 사회라는 커다란 톱니바퀴의 부속품으로만 여기기도 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근로하지 않고도 유유자적하는 삶을 꿈꾸는 이도 많을 것이다. 일하는 인간이라면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갈망한다.
저자 또한 삶에 짓눌려 인간으로서 동정심이 바닥나는 감정을 오롯이 느꼈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일하면서 느낀 더럽고 치사한(?) 사회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적기도 하였는데, 상사나 회사의 부조리한 모습에 눈감아야할 때도 있었고, 고객의 변덕스러운 컴플레인을 들어줘야 하고, 때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쥐꼬리 만한 월급에서 본인 비용으로 보상해줘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묵묵하게 견디면서 맡은 일을 계속해나갔다. 물론 일하는 과정에서 수고로움에 따른 보람이나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고 진솔하게 회고한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집안의 가장이 해고당하고 배달일에 뛰어드는 중국 영화 역행인생('逆行人生')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에 오러랩되기도 했다. (아래 이미지 참고)
누군가 흘린 피땀, 그들이 바친 노력 덕에 경제가 돌아가고, 노동자는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갈아넣으며 사회 전체를 떠받들고 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근로의 가치를 재발견한 저자의 작가로서의 재능과 사명감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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