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아파서 관광도 못하시는 어른들
주말이 되면 관광차가 많이 들어온다. 동창들, 동네 어르신들 마실, 각종 기관에서의 방문, 산악회드가 다양한 타이틀을 걸고 보라섬을 찾아주신다.
관광버스 가득 손님이 찰 때도 있고 좌석의 반도 못 채우고 올 때도 있다. 종종 안면을 익힌 가이드님들이 미리 전화를 주고 호떡을 주문하기도 한다. 보라색이라는 콘셉트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 같은데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이곳은 어른들이 더 많이 찾는다. 가장 많이 오는 나이대가 50~70세이다.
주말인 오늘도 관광차가 제법 들어왔다. 퍼플교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직접 걸어서 가야 하는 코스이다. 짧게 다리 세 개만 건넌다면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런데 섬을 걸어서 일주하거나 카트를 이용하면 3~4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걷기를 포기하시고 버스에서 내리지 않거나 주차장 근처 의자에 앉아서 일행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다.
푸드트럭옆에 의자와 테이블을 준비해 놓았다. 호떡을 드시는 분들이 편하게 드시게 하려는 배려이다. 종종 트럭 곁에서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이 있다. 호떡을 사지 않아서 의자에 앉는 것이 미안하셔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눈치껏 앉아서 쉬어가시라고 한다. 의자에 앉아서 일행을 기다리시며 호떡을 시켜 드시기도 하고 바다를 바라보시기도 한다.
"아버지는 왜 안 가셨어요? 다리가 편찮으세요?"
"응, 다리가 아파서 많이 못 걸어."
"그러셨구나. 진짜 여행은 다리가 튼튼할 때 많이 다녀야겠어요."
"젊어서는 일하느라 놀러 다닐 생각도 못했지."
웃자는 말로 도가니(무릎) 튼튼할 때 많이 다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려고 회사에서 바쁘게 일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 나도 예전에 학습지 교사를 십 년 정도 했는데 늘 집에 가면 빨라야 9시, 늦는 날엔 11시가 다 돼서 귀가하곤 했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정작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우리는 종종 '나중에' '이따가' '여유 좀 생기면'이란 말을 앞세우며 지금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뒤고 미룬다. 별일 없이 내가 원하는 미래가 다가올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오늘만 살고 죽을 것처럼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젠가 강의를 듣는데 강사님이
"지금 즐길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미래로 미루지 마세요. 행복은 가불 해서라도 즐기세요."
라는 말을 해주었다. 무릎을 탁 쳤다. 진짜 그렇다. 지금 내가 건강하다고 내일도 십 년 뒤에도 건강하라는 법은 없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가족들과 식사자리를 한 번 더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나의 경우도 아이들이 여수, 인천, 군산등 각지에 흩어져 살다 보니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 품 안에 있을 때 한 끼라도 더 밥을 같이 먹었을 것을 하고 후회한다. 요즘은 가족끼리 여행도 많이 다니던데 나는 그것도 많이 해보지 못했다. 주중엔 주중대로 늦었고 주말엔 보충수업 한다고 늘 바빴다. 다른 집 아이들 챙기는라 정작 내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다.
바쁘지 않은 날엔 우리 부부는 함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함께 갈 곳이 있으면 기꺼이 따라나선다. 내일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가끔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준비해야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늘 행복할 일들을 찾자. 가끔은 미래의 행복도 가불 해서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