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복궁역 서촌 '골목집'

요리와 함께, 사장님의 행복한 마음을 같이 냅니다

by Francis

미디어에서 칭찬 일색인 식당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는다. 미디어 마사지 전후가 좀 다르더라고. 전보다 북적이는 건 기본, 서비스가 늦거나 안 좋아지기도 하고,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맛이 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전 들른 경복궁역 ‘골목집’은 많이 다르더라.

tempImageRQpMJO.heic 경복궁역 4번 출구서 조금만 걸으면 갈 수 있다

얼마 전 나영석 PD가 운영하는(것 같은) 유튜브 ‘채널십오야’의 프로그램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에서 김대명 배우가 ‘골목집’을 단골 식당으로 소개하더고. 골목집은 경복궁역 부근 서촌 초입에 있는 자그마한 백반집이다. 솔직히 유튜브 방송이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집 비주얼이랄까?

tempImageXWIIPZ.heic
tempImageSBZJsY.heic
일찍 가서 그런가? 첨엔 사장님이 없더라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잉, 아무도 없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기다려 봐야지. 좀 이따 “어머, 손님이 앉아 계시네?” 웃으며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방송에서는 홍어 삼합에 간재미무침과 계란말이를 먹었지만, 나는 날 음식을 잘 못 먹는 데다 혼자니 그냥 ‘삶은 돼지고기’만 먹는 걸로.

tempImage20xJwH.heic 골목집 사장님. 주문 하자마자 바로 요리를 해주신다

보통 수육은 고기를 미리 삶아 보관했다가 그걸 썰어서 내주는 집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골목집은 주문하면 바로 생고기를 썰어 압력솥에 삶아주더라. 밑반찬에 소주를 찔끔거리며 사장님과 수다를 떨었다.


식구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장님은 결혼하시고 식구에 시댁과 처가까지 챙기느라 엄청 바쁜 인생을 사셨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인생’이란 걸 생각해본 적이 그전엔 없었대. 그러다 자녀들 다 독립하고 의무감에서 벗어나 요리하고 식당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제 정말 나를 위해 일하는구나.
아, 행복하다!


자식들이 “힘들다”, “무리다” 하며 말려도 사장님은 골목집에서 음식을 내는 게 너무 행복하단다.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한 20분쯤 이야기하다 보니 주문한 ‘삶은 돼지고기’가 나왔다.

tempImageWVzVMV.heic 보기에는 딱 뻣뻣하고 맛없게 생겼는데...

유튜브에서 김대명 배우와 나영석 PD가 말한대로,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비주얼이다. 일단 고기는 뻣뻣하게 생겼고 김치는 쉬어 꼬부라지기 직전 상태다. 솔직히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절대 안 시켰을 거다. 일단 떨리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김대명 배우가 칭찬하던 쌈장에 찍어 먹어봤다. 어? 이거 왜 이래? 왜 맛있어…

tempImage2PjA0q.heic 아... 지금도 생각난다. 츄릅...

사진으로 보기엔 퍽퍽해 보이던 고기는 막상 먹어보니 적당히 기름지고 부드럽다. 단백질뿐이라 생각했던 살코기 안에 적당히 기름이 있네? 김대명 배우 추천대로 적당히 기름 있는 고기에 마늘을 쌈장에 찍어 얹고, 양파와 고추를 얹어 배추김치 이불을 덮은 뒤 소주 한 잔 털고 입에 넣어 씹으니... 짭조름하면서도 부드러운 기름맛에 고추의 매콤함과 알싸한 마늘, 양파가 곰삭은 배추김치와 어우러져 밸런스가 좋더라. 여기에 배추김치 대신 갓김치를 얹으니 겨자 같은 매운맛이 더해져 또 다른 조합이다. 이 녀석도 곰삭은건데, 오히려 쉰내도 적고 갓김치의 강한 맛도 죽었다.


사장님과 이야기하며 야금야금 한 점에 한 잔 먹다 보니 어느새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소주 한 병 더 할 겸 김치찌개나 제육볶음 같은 것도 시켜보고 싶었지만 이미 배도 불렀고 술도 과했다. 이제 집에 가야지. 부모님이 생각나 삶은 돼지고기도 한 접시 더 시켜 포장해 가져갔다.


골목집, 전반적으로 모두 좋았다. 먹어본 건 삶은 돼지고기 뿐이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맛과, 그와 대비되는 깔끔한 밑반찬까지 모두 좋다. 가게 안 인테리어도 가산점 요소 ‘준 공중파’ 급인 나영석 PD의 유튜브에 나왔는데도 그 흔적이 전혀 없다.


난 대명이가 배우인 줄도 그때 알았어. 나영석 PD도 몰랐지.
그런데 막 외국인이 같이 사진을 찍더라?


김대명 배우도 그냥 단골인 줄만 알았지, 유명한 배우인 줄은 몰랐다는 사장님. 단골이 와서 뭘 한다니 허락한 거고, 나영석 PD와 스태프들은 그냥 따라온 친구들인 줄 알았단다.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도 그랬다. “이 집 최고다”, “여기 진짜 맛있다” 같은 뉘앙스는 없었다. 그런 미사여구보다 가게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 자체를 고스란히 전달하기만 하더라고. (잠깐의 대화였지만) ‘나를 위해 행복하게 장사하고 있다’는 사장님도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가끔 몸이 아플 정도로 피곤할 때도 있어.
그런데 음식을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거랑
그걸 먹은 손님이 좋아하는 게 너무 행복해.


쌍팔년도 감성인진 몰라도, 골목집은 신선한 재료와 사장님의 요리 노하우로만 맛을 내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음식을 내면서 느끼는 행복한 마음을 ‘토핑’으로 얹어 그 맛을 완성하는 게 아닐까? 이제 찬바람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친구들과 한 번 골목집을 찾아야겠다.


영업- 오전10시 30분 - 밤 10시

Francis 추천- 삶은돼지고기

지인 추천- 간재미무침, 홍어삼합, 김치찌개 등


덧) 보통 저런 술집에 혼자 가면 이런 말을 듣는다. “혼자는 안 됩니다.” “2인분부터입니다.”

그런데 골목집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난 거기서부터 골목집에 반했다. 이게 아다르고 어다르다잖아.


아이고, 어떡하지?
우리는 1인분 안주는 없는데, 괜찮아요?
tempImage58T6sR.heic 골목집의 메뉴판. 식사류 시키고 싶으면 2인 이상 팀짜서 갑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포의 정의를 직접 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