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is가 인정하는 노포의 네 가지 조건
노포라는 가치를 지자체나 단체에서도 꽤 중요하게 보나 보다. 아, Without circumcision… 이건 아니지. 알지? 옛날부터 노포 식당들은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중심으로 ‘백년가게’ 인증제를 밀고 있고.
서울만 해도 지금 160곳이 넘는 가게가 ‘백년가게’ 인증을 받았다. 광진구 ‘서북면옥’, 강동구 ‘초롱이고모부대찌개’… 이름만 들어도 오래된 냄새가 솔솔 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백년가게냐고? ‘노포’라는 말이 원래 한국 말이 아니니까.
중국에서 온 말도 아니다. 중국에서는 노포보다 랴오뎬(老店)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한자를 그대로 쓰면 한국의 ‘노점’이랑 헷갈린다. 노포는 일본어 ‘시니세(老鋪)’의 한자가 들어온 거다. 그러다 보니 국가기관에서 ‘노포’를 그대로 쓰긴 좀 애매했겠지. 일본 말이니까.
그런데 ‘백년가게’라는 이름을 대중화하는 데는 실패했나보다. 학원, 안경점 같은 곳도 포함되다 보니 식당 중심으로 떠오르는 ‘노포’와는 결이 좀 다르고. 맛집 찾을 때 ‘노포’ 키워드가 ‘백년가게’를 이기기 힘들더라고. 아무래도 감성이 다르잖아? 그런데, 노포를 생각하는 감성도 다들 좀 다른가보더라.
얼마 전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흥미로운 걸 느꼈다. 신림에 갈 일이 있어 ‘근처에 괜찮은 노포 없나요? 물었더니, 추천이 우르르 들어왔다. 근데 막상 찾아보니까 대부분 내가 생각한 노포와 조금 달랐다. 간판이나 인테리어가 좀 오래됐고 인테리어가 낡아 보일 뿐, 가게의 철학과 스토리, 메뉴가 이어지는 ‘그 맛집’ 느낌이 아니라… 그냥 레트로 무드 술집이더라. 심지어 문 연지 10년도 안된 집들도 있더라고.
추천해 준 사람들이 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이어서 그런가? 40대를 훌쩍 넘긴 나와는 기준이 다르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봤다.
노포를 어떻게 정의할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도나 칼럼, 에세이로 노포를 정의했겠지만, 나만의 기준을 한 번 세워보려고 한다. 단, 나는 식당이나 술집 위주로… 크게 내 가지 기준으로 정리되더라.
일본 혼슈의 게이운칸(慶雲館)은 1,300년이 넘었다고 하고, 중국에도 800년 넘게 닭 요리를 파는 집이 아직 영업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자영업이 오래 가기 어려운 환경이라 20년만 넘어가도 노포로 인정을 받는다. 내 기준도 비슷하다. 20년 정도 꾸준히 영업을 했다면, 그건 노포다.
둘째, 분점의 유무이다. 한 장소에서, 메뉴도 바꾸지 않고 이어온 집. 예를 들어 ‘이문 설농탕’이나 명동 ‘하동관’은 노포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분점이 여러 개 생기면? 그 순간부터는 나의 노포 리스트에서 빠진다. 하동관의 경우, 명동 본점까지는 인정. 그러나 코엑스,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지점들까지 노포는 아니다. 노포는 ‘그 집’에 가서, ‘그 공기’ 속에서 ‘그 세월’을 반찬삼아 먹는 거다. 음식만 같으면 뭐하나.
노포는,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부터 '아, 여기가 예전부터 있던 그 곳이구나'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대로여도 좋고, 살짝의 리뉴얼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건물을 새로 짓거나 다른 동네로 옮기면… 그건 다른 이야기. 을지면옥이 딱 그렇다. 사랑스럽고 맛있는, 훌륭한 식당이지만, 낙원상가 근처 새 건물에 들어섰을 때의 그 반듯함은… 더 이상 ‘을지면옥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주인은 바뀌어도 된다. 가족이 이어받거나, 누군가 뜻을 이어도 괜찮다. 다만 그 맛과 가게의 철학, 그 분위기가 유지돼야 한다. 신촌 서서갈비가 좋은 예이다.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후, 자손이 각각 명동과 연남동에 가게를 열었는데, 명동점은 여전히 노포라고 부르고 싶다. 고기와 술 빼고는 다 사 와야 하는 그 룰과 분위기가 그대로니까 노포는 이어짐이다. 간판이 아니라 맥락이 이어져야 한다.
앞으로 나는 이 기준으로 노포를 기록해보려 한다. 요즘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는 않아서 자주 갈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떠나보려고. 한 집 한 집 내가 담아내는 맛있는 노포 이야기.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그나저나 하나 물어볼게 댓글에 적어줘. 당신만의 노포를 판단하는 기준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