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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천호 쌍둥이네 포차

45년 암사 지박령이 말아주는 쌍둥이네 포차 썰

by Francis

이모, 여기 ***에 소주 하나요!


지친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 골목 포장마차를 발견한 드라마 주인공은 들어가 99% 이렇게 외친다. 그런데 이게 사실 다 불법이다. (나 'T' 맞네 ㅋ) 포장마차는 사실 다 불법인 만큼, 웬만한 잘 나가는 포차들은 ‘실내포차’로 콘셉트를 바꿨다. 오늘 소개할 ‘쌍둥이네 포차’ 역시 암사동과 천호동 사이 유명한 실내포차다.


지하철 8호선 암사역 2번 출구로 나와 암사시장 방향으로 걸어보자. 여정 사이 오피스텔 주변 식당, ‘역전할머니맥주’나 '투다리'는 가뿐히 무시하자.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한 10분 쯤 오르면 옆으로 진입로가 있지만 연석이 입구를 막고 있는 애매한 내리막길이 보인다. 그 언덕에 걸친 포차 감성 비주얼이 바로 '쌍둥이네 포차'다.

tempImagenfeHJ0.heic 쌍둥이네 포차의 입구. 저 비닐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는게 찐. 사진에 보이는 왼쪽 미닫이문은 자주 열리지 않는다

입구는 두 개. 우리가 온 방향 기준 정면의 '비닐 나무문'과 오른쪽 옆 '강화유리문'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쌍둥이네 포차의 찐 분위기를 보려면 비닐 나무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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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 보이는 주방과 냉장고

들어가면 왼쪽은 주방, 오른쪽은 작은 테이블 세 개와 포차 감성 냉장고가 보인다. 혼술이면 보통 이쪽인데, 오늘은 한산하니 안쪽 큰 홀로 들어가 자리잡았다.

tempImageMq19Ht.heic 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기본 안주. 난 이거로는 소주는 못마시겠더라. 단, 겨울 한정 저 양파와는 맥주 쌉 가능

늘 시키던 대로, 머릿고기와 비지찌개를 주문했다. (사실 내가 들어가 앉으면 물어본다. '머릿고기요?' ㅋㅋㅋ ) 기본 안주를 건드리며 기다리니 표창원 닮은 사장님이 따끈한 머릿고기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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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 짜리 머릿고기의 위엄. 완쪽은 접시 전체 모습, 가운데는 돼지 혀, 오른쪽은 돼지 코

혀에 돼지코까지 터프한 구성. 새우젓도 좋지만, 양파·마늘에 쌈장 듬뿍 찍어 먹는 ‘기성품 맛’ 조합도 은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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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찌개는 의외로 실하다. 공기밥 추가 비주얼.안매움 주의

소주 두 잔쯤 비우니 추가한 비지찌개도 등장. 잘 헹군 묵은지에 돼지고기, 비지 한 국자 풀어 끓인 스타일. 속까지 뜨끈하지만 맵지는 않다. 부드럽고 시큼한 맛? 약간 ‘고기 맛 나는 아주 순한 똠양꿍’ 느낌이다.

tempImage5FtVHl.heic 8,000원 짜리 모듬전. 의외로 실하지 않나?

에라이, 모듬전도 시키자! ‘모둠전’이 맞지만 메뉴판 표기는 ‘모듬전’이니까?! 호박전과 소시지전, 대구전과 두부전이 세 조각, 깻잎전은 아마 비싸서 반쪽짜리 두 개만 주나보다. 단골들은 “호박전 많이 주세요” 같은 커스텀도 된다는데 난 안 해봤다. 간장을 찍어 먹어도 좋고 제육볶음이나 다른 안주와 곁들어도 고소하니 맛있다. 기본 안주인 양파에 쌈장을 찍어 전이나 고기에 곁들이거나, 마늘도 알싸하니 좋다. 원래 볶음김치였는데 요즘은 생김치를 주나보다. 이건 계속 바뀌나봄.

tempImage0xC1p3.heic 2025년 11월 현재 가격표. 앞으로 오르기는 하겠지만, 저렴이~!

전과 비지찌개 국물, 남은 머릿고기에 소주를 비우다 보니 어느새 두 병 클리어. 이게 다 날씨와 기분이 쓸쓸한 탓이다. 계산은 31,000원. 머릿고기와 모듬전이 8천 원씩, 비지찌개 7천 원. 소주가 4천원에 맥주가 5천원이니 계산은 맞다.


사실 싼 가격이다. 예전처럼 안주 하나에 소주 한 병이면 만 원 두 장 내면 거스름돈까지 받는 게 쌍둥이네 포차의 가격이다. 그럼 왜 이렇게 싼지 궁금하지? 다른 포스팅에서는 ‘맛있어요’, ‘싸요’만 나오지, 여기가 왜 저렴한지를 분석해 알려주는 건 40년 넘게 암사동/천호동 토박이인 나 뿐이란말이지!!

tempImagewsNvgP.heic 이건 요즘 풍경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말 경에는 저 부근에서 추위에 떨며 새벽 일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다. 개미인력은 이사했음

1990년대 초, 암사·천호동은 팍팍한 동네였다. 아직도 암사와 명일, 천호에는 곳곳에 속칭 '하꼬방'이 남아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하루 벌이에 힘겨워했다. 그런 가운데 천호와 암사 사이인 이곳에는 인력사무소 ‘개미인력’이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막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tempImage42BImU.heic 이것이 그 인력 골목 맞은 편. 오른쪽에 쌍둥이네 포차 간판이 보이지 않는가?

하루 일과를 끝낸 그들은 가볍게 한잔하고 배를 채울 곳이 필요했고, 임대료 저렴한 반지하 언덕길에 그들을 상대하는 작은 술집들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1993년 문을 연 곳이 바로 쌍둥이네 포차다. 주인 부부가 쌍둥이 부모라 지었다나? 주 손님 대상이 노동자였다 보니 그 가격은 저렴하기 그지 없었고, 그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1996년 처음 갔을 때도 그렇더니, 2019년쯤도 머릿고기에 소주·맥주 합친 가격은 12,000원 정도였다. 물가가 많이 오른 지금도 그 조합은 17,000원. 라면에 김밥만 해도 만 원 넘는 세상에 이곳은 밥·술 다 해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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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네 포차는 물론, 고급스런 집은 당연 아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전히 매일 가락시장 가서 재료 사오고 찬도 직접 만든다고. 기본찬은 양파와 마늘, 쌈장에 볶은 김치나 김치 어묵볶음, 또는 생김치로 깔끔하다. 나오는 음식도 포차 답게 다양하고 싱싱하더라고.

tempImagebXPoB3.heic 내가 간 날은 여기저기 가득 찼더라. 하지만 에지간하면 혼술도 받아줌

굉장히 붐비는 날이 아닌 이상 혼술도 받아준다. 주말 프라임타임에는 가끔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 실망은 말자. 보통은 받아주고, 안되면 그 옆집들도 있으니까. 부근 중식 맛집 ‘용문객잔’이나 쯔양 맛집 ‘고추장구이’ 같은 데서 친구랑 1차 하고 들르면 정말 좋을 듯. 음식 맛도 괜찮지만, 쌍둥이네 포차의 최고 미덕은 그 분위기다. 사람들과 대화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그 정감 있는 분위기. 여기가 1차여도, 둘이 아무리 많이 먹고 마셔봐야 한 5만 원이면 만취하려나? 이 글 보고 댓글 다는 분, 언제든 오시라. 내가 대접할라니. 어때? 내가 처음 내세운 노포의 기준에 잘 맞지 않아?


덧) 글을 다 쓰고 보니, 요즘은 드라마에서, 포장마차에 들어가 ‘여기 안주랑 소주 한 병이요!’ 씬이 없어졌단다.

이유야 어쨌던 불법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드라마 속에서,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깐다고….


영업- 오후 2:30~12시 (일 휴무)

Francis 추천- 머릿고기, 모듬전, 비지찌개

지인 추천- 꼬막, 라면, 칼국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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