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고생들은 닭발을 좋아할까?
빨간 간판에 ‘궁서체’로 쓰여 있는 명일닭발. 왼쪽에는 닭발을 삶는 큰 솥이 바로 보이고… 여고생들의 단골집이었던 곳답게, 벽에는 여고생들의 낙서가 가득하다. 예전 생각이 절로 난다.
예전에는 닭발에 식혜, 막걸리, 계란찜 정도만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순대에 주먹밥, 오뎅탕, 오돌뼈, 곱창·순대 볶음 등 안주 종류가 꽤 늘었다. 그래도 주력 메뉴는 당연히 원조닭발.
일단 원조닭발 작은 것과 막걸리를 시켰다. 예전엔 작은 게 5천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11,000원. 그 ‘예전’이 2000년대 초반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싼 편이다.
닭발에 막걸리를 한 모금 넘기고 혀를 이리저리 굴려 뼈를 발라내니, 예전엔 무지 맵게 느껴졌던 게 지금은 적당히 매콤해 좋다. 단무지 한쪽 씹으면 입맛이 리셋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순대나 주먹밥 같은 사이드를 국물에 찍어 먹어도 좋다. 하지만 명일닭발에서는 ‘야끼만두’를 주문하는 게 근본이다. 데우거나 하지 않고 그냥 툭 내주는 야끼만두는 일단 국물에 담가 촉촉하게 한 후 먹어야 한다. 야끼만두에 닭발 국물이 스며들길 기다리다 보니, 옛 기억이 또 하나둘 올라온다.
(최근 흑역사가 되어버린 전 대통령) 부인의 모교로 유명세를 탄 명일여고는 여름 교복이 하얀 세라복으로 유명했다. 통학 라인이 겹치는 학교들이 90년대 말엔 대부분 남고였던지라, 명일여고 학생들은 근처 광문고나 한영고 학생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 시선 중 한 명이었고…
그러던 어느 날, (내 기준) 기괴한 풍경을 보게 됐다. 명일동 한 뒷골목 가게에서 명일여고 학생 서너 명이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오, 마이! 아기 손을 오므린 듯한 시뻘건 양념 잔뜩 머금은 닭발을 너도나도 쪽쪽 빠는 여고생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게다가 다 먹은 뼈를 ‘토도도독’ 뱉어내는 모습은, 당시 닭발은 입에도 못 대던 나로선 상상도 못할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네?
한 시간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손님이 꽤 들어왔다. 포장 손님도 많더라. 추억에 젖은 얼굴로 닭발을 포장해 가는 여자분들도 많았지만, MZ들도 꽤 보였다.
1980년대 초, 이 골목 근처 노점에서 닭발을 졸여 팔기 시작한 것이 명일닭발의 시작이다. 그러다 장사가 잘되면서, 포장마차 자리에서 도보 50m쯤 떨어진 지금의 가게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처음 이곳을 드나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곳은 단돈 1만 원만 있으면 친구 여러 명이 닭발 안주로 가볍게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맛집이었다. 매운맛에 입안이 깔깔해지면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식혜를 사곤 했던…?
검색해보니, 아직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은진♡나영’이나 ‘경수♡소연’ 같은 사랑 고백부터, ‘씨발’ 같은 원초적인 낙서… ‘좋은 추억 많이 남기자’, ‘잊지 말자’ 같은 우정을 다지는 문구까지. 가게에서 닭발에 막걸리를 마신 한 시간 동안, 잠시 그 시절로 워프한 듯한 아련한 기분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명일동 근처에 살았던 분들이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명일닭발에 한 번 들러보길. 아, 여기선 원조닭발이다. 무뼈닭발은 솔직히 좀 기분이 안 난다. 그런데, 대체 이유를 모르겠어 물어보니 댓글로 나한테 좀 알려줘.
여고생들은 왜 닭발을 좋아하는거야?
•영업- 오후 12시~오전 12시
•Francis 추천- 원조닭발, 야끼만두(메뉴에 없음)
•지인 추천- 순대, 주먹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