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글을 써야 작가다.
네 말이 옳다. 언제나 옳고 바르게 말한다. 오늘도 난 네가 얄밉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네게 말한다. 네가 답한다. 써야지, 써야 작가가 돼. 말로 원한다고 될까? 그냥 써! 머리로 가슴으로 우리들 사는 이야기를 좀 써 봐.
네가 의미 없는 말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일은 없다. 담백하니 논리적이고 반듯한 말을 제하면 네 입은 우직하게 닫혀 있다. 네가 하는 말, 목소리라도 들으려면 각오를 해야 한다. 뼈 때리는 말도 달게 받을 그런 각오 없이는 어렵다. 늘 네 입은 닫혀 있다. 눈빛만 형형한 침묵 일색이다. 우리가 겨울과 여름처럼 다름에도 40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나의 다정함이 역할을 했다고 말해도 되겠지? 우리가 벗으로 사귀고 오랜 세월을 지척에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던 건 허물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하는 잘 벼린 칼 같은 네 말 덕분이라 하겠다. 당당하고 똑똑한 네가 부족한 우리를 지적질하고 가르친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머리칼이 희끗해졌고 처음 만났을 때 보다 한층 성숙해졌다.
너의 카드는 메이저 16, 탑 카드다. 네 운명 여정수다.
탑 카드는 메이저 카드 중 가장 안타깝고 아쉬움이 많은 카드가 아닌가 싶다. 항상 양면이 있거늘 탑 카드는 유독 나쁜 상황에 당면할 때가 많다. 외부의 힘이 자신이 동일시하는 대상을 박살 내는 상황을 나타낸다. 노력과 결과물이 무너져 내린다. 카드 속 탑은 외부와 단절을 의미하고 고립 세계를 말한다. 탑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부당하고 억울하고 갑자기 들이닥친 일에 대처하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일 수 있다. 번개는 자연의 강력한 힘이며 신의 무기를 상징한다.
탑 카드의 사람처럼 너도 만만치 않은 삶을 산다. 네 유능함과 따뜻한 마음과는 다른 가족관계에 얽매여. 늘 네 시간은 없다. 형제들은 원수라도 만난 양 노려보고 소리 지른다. 위로와 사랑 그런 몽글거리는 것들은 마당의 순별이가 물어다 버렸다고 한탄한다. 순리대로 되지 않는 삶은 어찌 네게만 적용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드센 인연에 지쳐 이제는 독립을 해야겠다고 하더니 가족이 없다면 외로움에 더 쉽게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겠다며 이내 평안을 찾는다. 너는 항상 그렇게 있다.
너와 나의 드문 외출. 백화점 푸드코트는 기름진 향이 가득하다. 튀김 냄새와 고소하고 쫀득한 땅콩버터 냄새가 닿는다. 파삭파삭한 닭튀김, 알큰한 쌀국수 냄새도 흥건하다. 원피스 차림의 여인들이 꽤 있다. 그 모습이 자유롭고 예쁘다. 참으로 부럽다고 네 눈이 말한다.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본 적 없는 모습미라고 너는 말한다. 그들도 애쓰며 살고 있다고 나는 위로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
넌 침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이다. 현실이 팍팍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여태 그러했듯 고요히 지낼 것이다. 우리 이쁘게 곱게 단정하게 나이 들자. 오늘도 이렇다 할 일 없이 잘 보냈다. 너와 함께한 하루가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