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은 이야기와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흐른다. 우연히 들른 손님부터 쭉 알고 지낸 단골까지 삼삼오오 앉아서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미용실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미장원, 미용실, 헤어숍. 조금 세련된 명칭으로 바뀌었을 뿐 그 공간이 만드는 친밀함은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오늘도 나르샤 미용실에는 여인들이 예닐곱이나 앉아 딱히 웃기지도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고 갔다. 탱글탱글한 짧은 파마를 하고 정수리에 볼륨을 가득 넣은 드라이를 하고 간 이도 있지만 삶아 온 감자와 튀긴 닭껍질만 먹다가 간 이도 있다. 믹스 커피와 홍차맛 아이스티를 두 잔 이상 너끈히 마신 이도 있다. 집이나 직장에서 쏟아내지 않았던 까슬하고 습한 이야기를 거름망 없이 자연스럽게 뱉고 갔다.
나르샤 미용실은 꽤 오래 같은 자리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염색을 하고 두피 케어도 하는 동네 미용실이다. 머리를 다듬을 계획이 없는 여인들도 에어컨이 나오는 그곳에 들어와 잠시 땀을 식히고 이야기를 풀어놓고 간다. 풀어진 이야기는 쉴 새 없이 가위질을 하고 머리를 감기는 원장님 귀에 차곡차고 쌓인다. 양쪽 귀가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달팽이관을 통해 더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미용실 불을 끄고 셔트를 내리면 나르샤 원장님은 강변으로 간다. 매일 쌓이는 이야기를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들려주기 위해서다. 강물은 숱한 이야기를 감탄하면서 듣는다.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를 침묵하며 들어주는 강물이 있어서 그녀는 매일 소란스런 미용실에서 일할 수 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근황을 알 수 있다. 누가 아픈지, 어떤 남녀사이에 운우지정이 싹트고 있는지, 어느 집에 잔치가 있는지, 주인집 마나님이 눈부시게 차려입고 마실을 가는 까닭은 무엇인지... 미용실은 그 자체가 한 세계다.
나르샤 원장님의 운명 여정수는 메이저 21 세계 카드다.
세계 카드를 보자.
모서리에 4 원소를 나타내는 그림이 있다. 원이라는 완전한 도형이 있으며 여성은 가이아나 데미테르로 지구를 상징한다.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 공기와 같다고 표현한다. 무난하게 지나간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세계 카드는 일상적인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만 특별한 일들이 없을 때 나온다. 나의 세계가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의미다. 세계 카드는 나를 안전하게 유지하며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근본이 됨을 말한다.
원장님은 창문에 어렴풋이 비친 미소가 고운 사람이다. 마음껏 여행하길 꿈꾸는 소녀 같은 사람이라 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나 안고 있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울한 기분을 만드는 현실적인 문제들, 꼭꼭 숨어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그럼에도 상관없다. 미용실에 오는 이들이 놓고 간 이야기가 행복을 전해주고 눅눅한 기분 따위 말끔히 날려주기 때문이다.
나르샤 미용실은 손님을 만나 얼굴 보며 대화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공간이다. 오늘도 원장님은 꾸준히 들어오는 손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머리를 매만진다. 운명 여정수가 이끄는 대로 심기일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의 마음 그대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