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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Aug 29. 2024

초록이 지면 또 만나요

메이저 1  마법사 카드

쩍 떠날 것 같은 여름 아침. 초록점차 느슨해진다. 반짝이는 빛이 예쁘다. 소란스럽던 비도 그쳤다. 불어난 개울물이 큰 비가 쏟아졌던 지난밤을 말해줄 뿐이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열대야가 그리워질 것 같다. 여름이 떠날 것 같아 서운하다. 이상하다. 목 뒤로 줄줄 흐르던 땀, 간신히 당겨야 입을 수 있었던 바지, 더운 바람을 내던 선풍기, 미동도 없던 나뭇잎들, 쉼 없던 매미소리가 갑자기 가버릴 것 같아 서운하다. 가버릴 준비를 하는 초록 아침 조용하고 덤덤하다.


편히 앉아 읽는다. 몇 장 못 읽고 책을 덮기도 한다. 서 모임이만 조금 헐렁하다. 대개 셋 또는 넷이다. 오늘은 새로운 커피가 있다는 풍문에 둘이 늘었다. 모두 다섯이다. 늘 같은 공간이건만 사람 수에  따라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마법 같은 장소다. 탁자 위 오색 마삭 화분을 내리고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놓으면 다섯 명이 팔꿈치가 닿지 않게 앉을 수 있다. 사람이 늘거나 줄어도 함께 할 수 있다. 가까이 앉거나 멀리  앉거나 할 뿐이다.


서량으로 말하면 Y가 으뜸이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계몽사 세계명작전집로 읽기의 재미를 알게 된 그녀다. 유소년기에 읽었던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자녀에게 대물림한 것이 아닌 자신의 애 물이다. 엄마와 함께 사는 그녀가 마음을 쏟는 대상이다.


Y는 지방국립대 전임강사다. 노동법 전공이다. 수년간 교수 임용을 위해 애썼으나 뜻이 이뤄지지 않았다. 마음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지금은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다. 호기롭던 기개도 사라졌다. 엄마를 모시고 살기에 객기를 부릴 수도 없다.


Y의 운명 여정수는 메이저 1 마법사 카드다.

마법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다. 마법사는 신은 아니기에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다. 대신 잘 발견하기 어려운 법칙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나 의지를 실현할 수는 있다.

카드를 자세히 보자. 노란색이 바탕이다. 꽃이 있어서 더 환하다. 책상 위에 네 가지 원소를 나타내는 물건이 있다. 펜타클, 검, 컵, 지팡이다. 마법사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이는 정신과 현실을 연결한다는 뜻이다. 손에 든 '호'는 권위와 힘을 상징한다. 머리 위의 무한대 표시는 신의 힘과 법칙을 이용한다는 의미로 본다. 운명 여정수가 마법사인 사람들은 다재다능하고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업무 습득 능력이 뛰어나고 상황파악 능력,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서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마법사처럼 Y도 다재다능하다. 학창 시절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그녀가 다 처리했다. 선생님과 급우 간의 마찰, 급우 간의 시시비비는 그녀의 중재로 쉽게 끝났다. 그녀는 학교 행사에서도 주목받는 사람이었다.


독서모임 그녀의 작품이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죽마고우들을 위해 폐업한 떡볶이 가게를 세 내지 않고 자신이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논다. 책 대신 말갛게 씻은 차돌멩이 같은 콩알을 드르륵드르륵 간다. 서로 키득거린다. Y는 제발 교양 있는 사람이 되자며 점잖은 충고를 한다. 밈없이 말한다. 그녀의 성격이 그렇다. 꽃잎이 가붓가붓 날리는 향이 난다. 경쾌하고 가볍다. 감정을 숨기거나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원초적인 향기다. 비단실처럼 매끄럽게 코를 휘감는다. 니카라과 산 호세 워시드,


우리는 책방에서 책 읽기보다 놀기에 집중한다. 새콤하고 쌉싸름하고 달근한 맛이 난다며 호들갑을 떤다. 진분홍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그녀가 여기 있다. 활짝 웃는다. 법사가 사랑한 책들,  책냄새가 커피 향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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