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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미 May 25. 2022

억울하다고 소리치다가도 공손한 가사노동자로 살았던 이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무얼 바라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새까만 눈을 댕그르르 뜨고 있다 금세 울음을 터뜨리던 신생아는 어엿한 형아 아기가 되어있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조그마한 얼굴이 달덩이가 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눈을 맞추었고, 불빛 없는 새까만 밤에 자다 깨서 울다가도 “엄마 여기 있지요~”라는 나의 목소리에 울음을 뚝 그치며 내 목소리가 얼마나 따뜻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아이의 웃음을 만들고 위안을 건네는 대단한 존재였다.  


 누군가에게 대체불가능한 의미있는 사람이 되는 경험, 한치의 의심과 계산 없이 사랑만 나누는 경험은 육아노동에 지친 내 생활 구석구석에 작은 빛을 비추어 주었다. 덕분에 엄마라는 새 정체성에 조금씩 익숙해져갔고 그럴수록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도를 모른 채 쑥쑥 자라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던 불편함은 ‘왜 나만?’이라는 질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철없고 자유롭던 부부가 함께 엄마, 아빠가 되었는데 왜 나만 엄마라는 정체성의 옷을 두텁게 입고 다른 모든 정체성과는 멀어지고 있는지, 왜 나만 이토록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쉬지 않고 내 안에 들끓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시원한 날 밤, 그날도 역시 아이는 잠에서 깨어 침실을 울음소리로 가득 메웠다. 두 돌이 채 안 됐던 아이는 무슨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 시기 즈음 밤마다 깨서 큰 소리로 울었고 울음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를 안고 이런 저런 해결을 해보려해도 전혀 통하지가 않았다. 15kg의 아이를 안고 동동거리느라 콧잔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팔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결국 다시 쉽게 잠들 수 없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갔다.      

 

 새까만 밤이 머무르고 있는 거실 곳곳에 작은 불빛들이 반짝였다. 전기 스위치의 빨간 불빛, 전자 시계 불빛들을 찾으며 아이의 울음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시원한 늦여름의 바람이 불어왔다. 풀벌레 소리도 들렸다. 절대 잠들지 않을 거라고 불호령을 내리듯 악을 쓰며 울던 아이는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내 팔을 베고 거실 한가운데서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아이와의 사투를 벌인 지 한시간이 지나있었다. 나 역시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을 선풍기 삼아 잠들고 싶었으나 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맑아져갔다.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계속 머릿 속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왜 내게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까? 아이가 쉬지 않고 울던 방에는 분명 나도 있고, 남편도 있었는데 왜 나에게만 그 소리가 들리는 걸까?      


 남편은 가정일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다. 특별한 요청 없이도 집안 살림과 청소를 분담하여 척척 해냈고 그것이 당연히 본인의 몫이라 생각하는 사람, 부부 중 한사람만의 일방적인 가사노동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랬기에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가정에서 남편과 동등한 존재였고 아이가 태어난 후의 삶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스웨덴 아빠들이 유모차를 밀며 라떼를 한 손에 들고 산책하는 사진처럼 평화롭고 느긋한 북유럽의 음악이 나의 가정에도 들릴 것이라 믿었다. 그 음악에 맞추어 남편과 나는 아름다운 춤을 추며 꿈꿔왔던 이상적인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섬세하고 헌신적인 남편을 향해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과 원망의 감정을 품게 될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임신기간만 지나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평등의 감각은 조금씩 훼손되었다.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도맡아 키우면서부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퇴근이 없는 육아의 세계에서 엄마는 24시간 모든 신경을 켜고 있어야했고, 아빠는 그저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단 한순간도 육아노동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었고 어쩌다 잠깐 쉬는 순간에도 걱정과 긴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의 안위를 온전히 백프로 책임지고 있는 엄마는 책임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는 아빠와는 육아를 대하는 자세부터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인생 최고의 강도로 밤낮 없이 노동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증명해줄 수 있는 적절한 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급 노동자라는 위치는 내 모든 감각을 쪼그라들게 했고 가정 안에서 나는 점점 위축되었다.      


 남편이 특히나 고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저녁, 나의 하루 역시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고된 하루였다. 아이를 안아주고, 놀아주고, 재우고, 밥 먹이고, 씻기고, 청소하느라 단 5분도 마음 편한 고요를 갖지 못하던 날이었다. 고된 남편이 아이의 울음 소리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때 마다 내 마음은 분주하고 불안해진 채 서둘러 남편에게 ‘어서 들어가서 좀 쉬어’라고 말을 건넸다.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육아라는 무급노동을 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남편과 아이를 위한 보조적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나의 강한 자의식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나는 유능하고 강한 사회인으로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사실 나의 무의식은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가 가정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그동안 사회로부터 학습해온 이상적인 기혼여성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애를 써도 무급 노동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던 나는, 나를 증명해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리고 가정 안에서 나의 역할을 인정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노력은 결국 나를 지우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의 반주곡에 맞추어 배경이 되는 춤을 추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열렬히 보조적 존재가 되었다.      

 ‘왜 나만? 왜 나만 이렇게 다 해야해?’라고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좋은 보조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날들이었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급 가사노동자의 위치는 평등을 향한 명민한 감각과 질문을 점차 뿌옇게 가렸고 결국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엄마의 음악에 맞추어 자발적으로 보조자의 춤을 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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