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의 대합실 의자에 앉아 오늘을 함께할 친구를 기다렸다. 시간이 꽤나 남았다. 최적의 동선으로 수 없이 바삐 지나갔을 좁은 공간이지만 오늘만은 낮은 시선으로 천천히 바라보게 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덜컹덜컹 뛰듯 걸어내려오며 바삐 개찰구로 향하는 사람들. 쿠궁거리는 기차소리에 얼마있어 쏟아지듯 출구로 향하는 사람들. 늘 보던 뻔한 풍경에 지루해질 때 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증명사진부스.
우리 동네의 지하철역 대합실에는 줄곧 증명사진부스가 있어왔다. 10초 이내로 사진이 출력된다는 표지. 한쪽 엉덩이만 겨우 걸칠 작은 간이 의자와 상체를 가릴 정도의 가림 천이 눈에 띈다.
역이 세워진지는 거진 10년. 그 처음을 함께한 이 부스는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채 본래 흰색이었을 모습 위에 약간은 누런 색이 이끼껴있다. 딱 10년정도 전의 디자인인 듯 외벽에 붙여낸 광고 표지에도 촌스러움이 가득하다. 잘 관리되어 온 듯 보기 싫은 모습은 아니다.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이용해보거나 누가 앉아있는 것조차 본 적이 없다. 꽤나 수요가 있으니 오랫동안 터줏대감 마냥 자리잡고 있을텐데. 역의 대합실이란 언제나 잠깐 지나쳐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찰나의 공간일테니까.
대부분은 한 껏 꾸며진 전문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어낼테지만 몇몇은 북적이는 대합실과 다소 맞지 않은 분위기를 지닌 동떨어진 초라한 공간에 앉아 사진을 찍어내겠지. 그들은 성심성의 껏 찍어내는 전문사진관 보다 그저 값싸고 빠른 즉석 사진이 필요할거다.
문득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모두에게 사랑받고 재밌는 사람이기보다는 가장 위급하고 소중한 순간 생각나는 사람. 매서웠던 불도 찰나의 순간에 꺼지고, 아침을 모르고 광란하는 보름달도 언젠가 지기 마련이니까.
북적거림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채 항상 같은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모든 사람이 화려한 파티의 참석자가 될 필요는 없을테지. 그 다음 날 초췌한 몰골로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을 깨어내고, 저 멀리 기다리던 친구가 눈에 띈다.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진 못했나 보다. 긴 침묵과 공상을 깨고싶지 않은 마음이었을까. 조용히 수십 보를 뒤 따라 걸었다. 비로소 함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타며 두 사람의 걸음이 멈췄을 때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