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스페인의 예수회 사제이자 철학자였던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그의 저서에서 "제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이 말은 오히려 더욱 절실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SNS 피드에는 완벽하게 꾸민 외모, 흠잡을 데 없는 커리어, 이상적인 가족과 여행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흘러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최고의 순간만을 편집하여 보여주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자신의 결점과 부족함을 더욱 크게 느낀다. 하지만 그라시안이 이미 간파했듯이,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화면 너머의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결점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현대 사회는 역설적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결점을 숨기고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길 요구받는다. 직장에서는 약점을 드러내면 안 되고, 관계에서는 항상 긍정적이어야 하며, 자기계발서는 끊임없이 '더 나은 나'가 되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그라시안의 지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는 "결점을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장점을 더욱 빛내고 인격을 함양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깨닫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장의 첫걸음이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불완전한 자신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급한 성격, 우유부단함, 질투심, 게으름, 고집... 우리는 누구나 이런 결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그가 자신의 성급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서둘러 내리고,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며, 관계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급한 성격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려 노력할 수 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루를 기다려보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인내심이라는 새로운 덕목을 키워간다.
우유부단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결단력 부족을 자각한 사람은 작은 결정부터 연습한다. 메뉴 고르기, 옷 선택하기, 주말 계획 정하기 같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힘을 키워간다. 결점을 인정하는 것이 곧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강해지기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라시안이 통찰한 또 하나의 진실은 결점을 고치려는 노력이 오히려 장점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첫째,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겸손해진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을 인정할 때, 그의 재능은 오만함이 아닌 감사함으로 발현된다. 탁월한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려 노력할 때, 그의 기술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왜냐하면 그는 협업의 가치를 알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결점과 씨름한 경험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키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직시한 사람은 타인의 실수와 부족함에도 관대해진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오는 진정한 공감이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신뢰와 안정감을 주고, 결과적으로 더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셋째, 결점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은 다른 영역으로도 전이된다. 한 가지 결점을 극복한 경험은 "나는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이는 인생의 다른 도전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완벽주의는 현대인의 큰 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완벽한 계획이 없으면 실행하지 않고, 완벽한 결과를 보장할 수 없으면 도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삶을 정체시키는 독이다.
그라시안의 철학은 완벽주의에 대한 해독제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불완전한 상태로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서툴러도 배우고, 실수해도 다시 시도하며, 부족해도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는 자기계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목표는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것이다. 결점 없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알고 그것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라시안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불완전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며, 결점은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결점들 - 때로는 남의 것으로, 때로는 자신의 것으로 - 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더 깊이 있는 인간이 되고,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며, 더 지혜로운 존재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스승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점 없는 완벽함이 아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 그리고 타인의 결점까지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라시안이 수백 년 전에 전했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진정한 인격의 완성이다.
결점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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