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사위는 캄캄하고 책상 위의 시계만 흐릿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매트리스 위의 시트와 얇은 홑이불이 축축하다.
잠자리에 자면서 침대 위에 물 같은 걸 두고 잠들지 않았는데 어디서 젖은 건지 당황스러웠다.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티셔츠를 벗어서 얼굴을 훓어내렸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꿈내용을 기억해 보려 하는지 인상을 구기며 애를 썼지만 억지로 생각을 끄집어낼 수 없었다.
차가운 물속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두서없는 이야기와 장소들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지만 비슷한 꿈을 꾸었다. 조금씩 달라져있어도 익숙한 기억들.
곧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한다며 쉬면서 안정을 찾으라는 말,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오면 박팀장이 내게 한말이었다. 인사 치례로 하는 인사말인 줄 알면서도 눈가가 촉촉해졌었다. 박 과장이 아니었으면 나는 버티지 못하고 더 일찍 퇴사를 했었을 것이다.
혜린과 이별이 나를 이렇게 무너지게 만들었다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이별하게 된 이유는 그 녀석 때문이다.
먹물처럼 새까맣고 노란 눈을 빛내던 그 녀석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처음 공원벤치의 그 녀석을 발견한 혜린은 넋을 잃고 바라보다 매력에 빠져버렸다.
나는 그 녀석을 언젠가 본 기억이 떠올랐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본 적이 있던 그 녀석을 보고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 몸이 얼어붙었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 고양이에게 크게 할퀴거나 다쳤었던 게 틀림없었다.
개에게 물린 유년의 기억이 남은 사람은 개포피아에 빠져 작은 강아지도 무서워 어쩌지 못하듯이 나 역시 그런 것이었다.
혜린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예뻐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서 나는 동물 따위를 기르거나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멀지 감치 떨어져서 혜린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혜린과 나는 그 녀석을 떠나 천천히 공원을 걸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언제 나타났는지 우리를 쪼르르 따라와 배를 뒤집고 눕기 시작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앞서나가면 혜린이 앞에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혜린은 웃으며 내가 간택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공포를 떠올리며 순간 그 녀석을 걷어차 버렸다.
한쪽 눈을 맞은 그 녀석은 앙칼지고 구슬픈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고 혜린은 뭐 하는 짓이냐며 소리를 쳤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혜린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경멸과 멸시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그 녀석이 비명을 지르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미야옹 하고 다정한 울음을 내며 내게 또다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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