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시한 날

사랑을 닦는다.

by 승환

사랑을 닦는다.



접시를 꼼꼼히 닦는다

식기세척기 안을 채우고

그 틈으로 뿌듯함을 마저 메운다.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문지른다.

손끝에 미끄러질 만큼

당신과 나의 사이,

작은 이물질을 놓치지 않았다.


물 아까운 줄 모르고

아직도 어설프고 서툴다는

말들이 날 선채 날아온다.


어설픈 설거지는 나의 사랑이었다.

나는 설걷이를 사랑한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어설픈 사랑을 비웃는 듯

얼굴이 달아 오른다.


세탁기는 아직도 낯설고

계란말이는 늘 부숴진다.

당신은 늘 나의 고백보다

완벽한 결과를 믿는다


연리지를 흉내낸 덩쿨처럼

나는 당신 몸에 매달린다.

닿았다고 믿은 우리 사이는,

비 맞은 거미줄처럼

빈 껍데기들만 흔들린다.


세척이 끝난

접시를 마른 행주로 닦는

당신의 손길이

나를 다시 뽀송하게 만든다.


당신의 눈이 찡그리면

내 입술이 이그러진다.

당신이 떨구는 눈물은

내입속을 먼저 적신다.


서로를 원망하며

서로가 닮아간다

목소리가 엉켜

누구의 소리인지 모른 채

조건반사처럼, 움찔거린다.


비어 있으면서도

깨질까 봐 닿지 못하고,


투명한

두 개의 유리잔


오늘도 해야할 사랑이 있어

접시를 닦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셔터를 내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