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을 접는다.
비닐을 접는다
어제 산 빵들은 달콤한 가루를 날리며 사라졌고
남은 것은 미끈한 투명함뿐.
하루치의 삶을 곱게 접어
싱크대 아래 작은 아카이브에 끼워 넣는다.
아내는 궁색하다고 부질없다고 하지만
이 것은 집안의 내력이였다.
어머니는 할머니로부터 배워온 얆고 선명한 주름의 의식이
3대째 내려오고 있었다.
어린시절, 점심시간 도시락통 안에 감춰진
라면봉지의 김을 꺼내 먹으면
펼치려 애를 쓰던 접힌 몸을 보았다.
버려지는 것과 버티는 것의 어디즘에 서야만 하는
인생을 마음에 새겼다.
나의 아카이브는 싱크대서랍과 작은 틈,
그리고 마음의 한켠이었다.
언제가는 쓴다고 하지만
한 번도 쓴 적은 없다는 비밀은
비닐이 너무 예쁘기 떄문이다.
예쁘고 가볍고 투명한 것을 사랑한다.
비닐을 사랑하는 값,
백원동전 하나를 기꺼이 내고 만다.
다람쥐의 겨울처럼
마음 한 켠으로 모으고 곱게 접고
또 잊어버린다.
그래도 나는 접는다.
오늘도 아내의 잔소리에
말대신 곱게 주름을 펴서 접는다.
눈물도 웃음도 얇게 몇 번이고 접는다
언제가는 꺼내 쓸일이 있을 것이다.
아니 쓰지않아서 예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