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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굿즈, 굿즈(에 대하여)

유통업계를 장악한 굿즈 산업에 대한 단상

by Tommyhslee

재밌는 현상들, but 재미를 넘어 사업 전략이 된다

최근 여행 브이로그들을 보다가, 재밌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보통 브이로그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크리에이터가 20대 여성인데요, 이들이 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소품샵입니다. 특히 국내 여행 브이로그에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소품샵이 등장합니다. 서울 부산은 물론 제주, 인천, 대구, 청주, 대전, 동해 묵호 등 지역도 다양하죠. 여기에는 외부 굿즈를 모아서 판매하는 곳부터 특정 컨셉의 굿즈만 판매하거나(고양이 캐릭터 굿즈만 판매한다거나..) 지역 특색을 활용한 굿즈들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곳까지 다양한데 어떤 도시에는 상업지역에 굿즈를 판매하는 소품샵이 다수 몰려있어 소품샵 투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죠.


사실 굿즈는 이미 상당히 가까이 와있기도 하고, 그 산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라부부, 케이팝데몬헌터스, 국립중앙박물관, 스타벅스, 산리오, 프로야구, 티니핑, 그리고 케이팝까지 최근 몇 년간 굿즈로 큰 줄기의 트렌드를 주도했던 곳들이죠. 컨슈머 업계에서는 이 굿즈 열풍이 반짝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어엿한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어떤 굿즈를 기획하고’, ‘어떤 제품과 콜라보하고’, ‘또 어떤 IP를 활용하는지’가 상품 판매 전략에 상당한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방에 매달려 있는 키링들부터 앞에서 이야기했던 소품샵, 가챠샵, 굿즈 팝업 등은 최근 몇 년간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굿즈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장면들이죠. 매스미디어를 중심으로 콘텐츠와 캐릭터를 소비하던 과거와 달리 개인화된 채널에서 IP를 소비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꼭 모두가 알고 유명한 IP가 아니더라도 특정 세대 또는 타깃층에서 유명한 IP가 유의미하게 소비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춰 굿즈 경제는 빠르게 활성화되었습니다.


일단, 굿즈가 뭘까요?

여러 뜻이 있겠지만 오늘 아티클에서 말하는 의미는 캐릭터나 콘텐츠와 같은 IP를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방식으로 상품화한 것을 말합니다. 특히 처음부터 상품을 염두하고 기획한 브랜드 제품들과 달리 캐릭터나 콘텐츠와 같이 오리지널IP가 먼저 만들어지고, IP 확장 차원에서 상품화된 것들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제품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굿즈 구매의 최우선 고려대상은 IP입니다. 팬들은 'IP가 상품에 얼마나 잘 녹아들었는지', '오리지널의 세계관과 서사가 잘 구축되어 있는지', '어떤 이미지가 활용되었는지', 'IP와 상품의 연결성이 설득력 있는지' 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굿즈를 구매하는 대상이 고객인 동시에 해당 IP를 애정하는 팬덤이기 때문에 일반 고객과는 다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 브랜드 제품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죠.


이런 굿즈와 관련된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일반적인 콘텐츠IP(웹소설, 웹툰, 게임, 영화, 드라마 등) 기반의 굿즈들은 수년 전부터 팝업 스토어로 큰 화제를 낳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팝마트의 라부부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죠.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도 인기고 K-POP은 굿즈를 통해 사업 다각화가 이뤄졌으며, KBO와 같은 스포츠리그도 다양한 콜라보를 통해 굿즈 매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종교계까지 굿즈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 열풍이 대단하죠. 이런 내용들은 이미 많은 기사와 아티클에서 다뤄져 굳이 제가 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시면 가장 하단의 사례 내용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굿즈는 기본적으로 IP를 보유하고 있는 IP홀더의 영역이지만, IP가 없는 IP플랫폼이나 일반 기업들도 굿즈를 활용합니다. 방법은 외부 IP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출시해 고객 접점을 확대하는 거죠. 소비자들이 선호하고, 즐거워할 IP가 뭔지 고민하고 이를 제품에 녹여내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실제 매출을 견인하고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저변을 넓히는 생존 전략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내가 모르면 안 유명?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그 IP가 유명해?',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것보다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게 좋지 않겠어?' 하는 생각들입니다. 지금 소비 트렌드에서는 내가 아는 IP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확보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찾고 원하는 IP인지 생각해야죠. 무조건 메이저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게 중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구매 전환율도 떨어지고요. 발 빠른 기업들이 적지만 확실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소규모 콜라보레이션을 자주하는 이유입니다. 설령 범위는 좁더라도 밀도와 빈도를 높히는 판매 전략이 더 임팩트 있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게 최근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굿즈 활용 방안이자 IP비즈니스의 기본 전략이기도 합니다. 향후 유통 및 소비재 등 컨슈머 영역에 있는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경쟁력이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소비자들이 그렇게 바뀌고 있으니까요.


굿즈, 사업으로의 가능성은?

예전 같으면 캐릭터 굿즈 자체가 상당히 마이너한 시장으로 여겨졌다면, 개인의 취향이 다양화되고, 서브컬쳐가 주류로 올라오며 이처럼 굿즈 시장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장에서 수천억 매출을 내고, 유니콘 규모의 기업도 나올 수도 있을까?' 하면 그 점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기업들이 굿즈만으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판매 전략의 일환으로 '굿즈'를 선택하기 때문에 굿즈만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기업을 아직은 많이 찾기 어렵고요, 굿즈 산업을 이끄는 게 결국 '캐릭터'인데 국내 한정 메이저한 캐릭터 산업 플레이어는 대부분 유아용, 아동용 캐릭터 업체들입니다. Top2라고 볼 수 있는 더핑크퐁컴퍼니와 SAMG엔터테인먼트의 연간 매출액이 1천억 전후입니다('24년 기준 더핑크퐁 974억, SAMG엔터 1,164억). 코스닥 상장사인 SAMG의 시가총액이 5~6천억 정도고, 곧 상장 예정인 더핑크퐁컴퍼니의 예상 시가총액이 4~5천억 정도라고 하니, 아직 일반 캐릭터 산업이 굿즈로 이 정도 규모를 넘어서는 건 쉽게 장담하기 어렵겠죠.


다만 50~500억 규모의 매출을 내면서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은 상당히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국내에 경쟁력 있는 캐릭터IP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점차 글로벌로 성장하면 한국에서도 팝마트나 산리오 같은 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컨슈머 영역에서 K를 달고 있는 모든 산업은 K-POP 위에 올려져 있다

K뷰티, K푸드, K패션. 앞에 K자를 달고 있는 소비재 기업들은 사실상 모두 K팝 위에 올려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각 시장규모는 K팝보다 클지언정 글로벌에서의 영향력은 K팝이 모든 것의 기반이자 시초이고 특히 해외로 진출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비히클 역할을 하는 것도 K팝입니다. 아마 K굿즈나 K캐릭터도 비슷한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을 듯합니다. 국내 굿즈 산업은 K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상당한 레벨업이 가능할 텐데 국내 기업은 아니지만 라부부가 그 덕을 톡톡하게 보기도 했죠. 다만 라부부를 판매한 팝마트의 경우 글로벌 유통망이 확보되어 있었기에 운이 왔을 때 그 성과를 최대한으로 창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K굿즈 산업에 가장 중요한 건 K팝과 글로벌 유통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굿즈도 IP산업, 핵심은 사업 영속성에 있다

하지만 그런 라부부도 빠른 속도로 열풍이 사그라들었죠. 일단 '열풍'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그 IP는 오래가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IP는 천천히, 자연스러우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스며들어야 설득력이 생기고 라포(rapport)가 만들어지는데 라부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거의 무지성에 가깝게 구매하고 캐릭터를 소비했기 때문에 그게 어떤 세계관과 서사를 갖고 있는지 이해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굿즈도 엄연히 IP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설득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IP가 갖고 있는 콘텐츠가 단단해야 하고요. 콘텐츠 없이 굿즈만으로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그 IP를 계속 떠받쳐줄 콘텐츠(예컨대 KBO굿즈라면 프로야구리그가 그 기반이 될 것이고, 포켓몬스터라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되는 것이며, 그 캐릭터를 그려낸 작가 자체가 기반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가 있다면 사업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겠죠.


물론 예외는 늘 있습니다. 미키마우스나 헬로키티는 이런 콘텐츠 없이 캐릭터 그 자체로, 굿즈 그 자체로 소비됩니다. 미키마우스는 애니메이션 기반이지만 현시점에서는 실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면서 미키마우스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팬덤이 상당히 적을 것이고, 헬로키티는 애초에 상품화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대신 각각 100년, 50년이라는 긴 레거시가 있죠. 캐릭터 자체로 소비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면, 또 그걸 오랜 시간 증명했다면 캐릭터 자체로도 승부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콘텐츠를 필수적입니다. 콘텐츠가 IP를 롱런하게 만드는 기반이고, 그게 사업 영속성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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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마트와 라부부

먼저 최근 몇 년간 젊은 소비층들에게 가장 뜨거웠던 굿즈는 바로 ‘키링’이 아닐까 싶습니다. 키링의 유행은 이미 20~3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유행이 뜨고 지고를 반복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떠올랐죠. 그러다 키링 문화를 한 단계 더 대중적으로 끌어올린 게 중국 팝마트의 ‘라부부’였습니다. 워낙 큰 유행이었던 터라 다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홍콩에 상장된 팝마트의 주가는 2023년초 20홍콩달러(HKD)에서 2025년에는 200홍콩달러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주가가 10배 오르며 회사의 시가총액은 한화 60조원을 돌파했죠.


팝마트는 기본적으로 유통회사입니다. IP플랫폼이죠. 이들은 외부 작가나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그들의 캐릭터를 상품화하고, 이를 팝마트 매장에서 판매해 수입을 창출합니다. 자체 IP도 개발하고 있죠. 막강한 판매력으로 대량 생산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좋은 퀄리티, 여러 캐릭터를 활용한 소비 다양성을 제공하고, 구매한 물품을 개봉 후에 확인할 수 있는 랜덤박스라는 마케팅 전략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해당 캐릭터를 소비한 게 팝마트 열풍의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캐릭터 굿즈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사업 역량을 쌓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캐릭터 굿즈뿐만이 아니죠. 이번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보겠습니다. 트렌드에 예민하신 분들은 벌써 아셨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새롭게 떠오른 굿즈 명가입니다. 검색창에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만 쳐도 연관검색어로 굿즈가 나올 만큼 이미 그 명성은 대단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굿즈로 유명해진 것은 삼국시대 유물인 국보 ‘반가사유상’을 굿즈로 제작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덕분입니다. 반가사유상을 여러 가지 색깔로 재해석한 미니어쳐 굿즈는 출시 이후 지속적인 품절대란이 일어났고, 이후 출시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김홍도의 취객 선비 술잔’과 같은 제품들의 흥행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전통가치와 예술이라는 독보적인 IP를 재해석하며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여기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 열풍까지 더해져 2025년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무려 270만 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64%나 증가했고 올해 굿즈 매출액은 300억원을 예상하고 있죠. 한국 관람객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 발걸음이 이어져 박물관은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리죠. 또 다른 굿즈 명가인 스타벅스는 발 빠르게 국립박물관과 협업해 ‘사유의 방’이라는 굿즈 세트를 출시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년 전만 해도 우리의 전통예술이 IP가 되어 국내외로 판매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 역시도 변화된 취향과 소비 트렌드에 따라 하나의 큰 문화가 되었습니다.


*케이팝과 굿즈

다음 사례는 케이팝입니다. 케이팝 아이돌을 매니지먼트하는 엔터회사의 주요 매출원은 앨범, 콘서트, 음원으로 나뉘는데 최근 여기에 추가된 것이 바로 굿즈입니다. 케이팝 산업에서는 MD라고도 부르죠. 실제로 2025년 상반기 주요 엔터사 실적에서도 굿즈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스엠의 경우 2024년 상반기 800억 수준이던 굿즈 매출이 2025년 상반기에는 1천억을 넘어서며 3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 역시 2024년 320억 수준이던 게 25년에는 450억으로 40% 이상 증가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죠. 그야말로 굿즈가 엔터사의 성장을 견인하는 셈입니다. 사실 케이팝 팬들은 ‘앨범’을 구매하는 문화가 여전히 강합니다. 요즘은 쉽게 들을 수도 없는 CD 앨범이지만 그 안에 포함된 포토카드, 화보집과 같은 부수적인 제품을 소장하기 위해서 구매하죠. 그러던 것이 조금씩 더 변화해서 응원봉이나 패션 잡화 같은 굿즈로 출시되고, 또 식품이나 의류, 문구류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아이돌 그룹의 IP를 라이선싱하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제품도 단순히 아이돌의 초상만을 활용하는 예전 방식이 아니라 세계관과 컨셉을 추상적으로 반영해 제품 자체로써도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에스엠의 걸그룹인 에스파의 경우 SAMG엔터테인먼트의 티니핑이 콜라보한 캐릭터가 출시되기도 했고, 굿즈는 아니지만 현대제철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뮤직비디오에 당진제철소가 등장하는 등 ‘쇠맛’이라는 그룹 컨셉에 어울리는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죠. 엔터회사들은 이런 식으로 케이팝 IP를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해, 케이팝 굿즈 수요가 단순히 아이돌 팬덤을 넘어 대중으로 저변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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