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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C Feb 11. 2023

I AM DOING A NEW THING

Isaiah 43:19

안녕하세요 목사님,


....................


친정어머니께서 암진단 받으신지 3년 반이 지났고, 한고비 한고비 넘으며 지내셨지만 다음주에 나오는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항암약을 사용하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아주 힘든 마지막으로 알려진 항암약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4)

이 말씀은 13년전 제 남동생이 당시 30세에 대장암으로 하나님께 가기전, 정말 믿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제가 뭐가 뭔지도 모른채 붙잡고 울며 기도했던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기도응답을 위한 구절이라는걸 어디선가 찾고, 이 말씀을 계속 생각하며 동생을 살려달라 기도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이게 무슨 말씀일까.. 의문이 있었습니다.  받은 줄로 믿으라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받지 않았어도 받은줄로 알라? 정신승리를 말씀하시는 걸까?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and it will be yours). 뭐가 그대로 될까, 구하는 그것이 그대로 될까? 하나님은 나 보다 더 나에게 좋은 것을 아신다는데, 그 뜻이 그대로 될까?  


동생은 먼저 떠났고, 그 이전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듯이 살았던 저는 그래도 나름의 믿음의 성장 속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3년반전 어머니의 암 소식을 들으며 모든것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생생히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사야 43:18-19)

 라는 말씀으로 저를 일단(?) 진정시켜 주셨습니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거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마 이 말씀은 저를 향해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신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저와 같은 모태신앙인이지만, 또 저와 같이 ‘못된 신앙’으로, 제가 볼때는 썬데이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엄마의 투병에 자칫 무심해 보이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때면 아침 출근길에 혼자 차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던것 같아요. ‘하나님, 저 사람은 사랑이 없어요. 하나님, 정말 저건 아니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 단 2개의 계명을 못지키잖아요!!’ 그러고 있는 저에게 어느날 차안에서 문득,  ‘너는 사랑하니? 너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니?’  물으셨어요.


그리고 마가복음 11:24과 이어서 25절이 보였어요.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마가복음 11:25)

혐의가 있어도 용서하라 하셨는데, 저는 제 마음에 들지 않아 남편을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셨어요. 

‘받은줄로 믿으라’ ; 제가 ‘받기만 하면’ 하나님 위해 이렇게 하겠습니다. ‘받기만 하면’ 이웃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생각했던 이 모든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행하고 있어야 했던 일들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저의 마음으로 깊이 깨달은 후, 저의 중심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는듯도 하지만, 아직도 저의 삶은 그대로 거기에 있는 것도 같습니다.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삶이 되는 것을 꿈꾸기도 하지만, 뭔가 완전히 변해야 하나 생각하면 두렵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습니다. 엄마를 걱정하느라, 저의 가족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미루지 않으려 합니다. 엄마의 슬픔에 대한 공감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 자기연민에 빠져 삶의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이 모든 언덕과 계곡 (hills & valleys)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몇주전에 사도행전 12장을 전해주실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동생이 떠난 후,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괴로웠거든요. 왜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살아야 했을까? 야고보를 위한 기도가 부족했을까? 야고보를 덜 사랑하셨을까? 내 기도가 부족해서였을까? 우리가족을 덜 사랑하실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데, 살았어야 영광이 되지 않았을까. 지붕을 뜯었던 4명의 친구 중, 내가 믿음이 부족한 1명이어서 침대가 내려가지 못했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사도행전 12:24)

이 모든일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우리는 죽음으로 혹은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하는 존재이구나. 이것이 우리의 생의 목적이구나.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이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명제를 다시한번 생각합니다. 믿지만 동시에 믿음이 없음을 도와달라고 소리쳐 외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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