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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C Jun 10. 2023

엄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기억한다.

큰 아이 J는 의학적 분류에 의하면 미숙아로 태어났다. 37주가 지나야 하는데, 36주에 태어났다.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출산 휴가를 처음 시작한 토요일 오전에 양수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몸무게와 쫙 펴진 폐를 증명하는 울음소리 덕분에 인큐베이터 없이 곧장 안고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던 첫아이 육아에,  특별히 예민하고 많이 울던 이 아기 덕분에 외할머니인 친정엄마는 가끔 J가 안예쁘다시며 딸 걱정을 하셨다. 그래도 양가 첫 손주에 포동포동 뽀얀 J는 정말 대단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9월이면 J는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 이 아이를 생각할때면 과도한 벅차오름이 있다. 심성이 고운 아이이기도 하고, 주어진 /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열심히 하려는 노력도 있고, 무려 중2였을때도 별 큰 소리 낼일 없이 평화롭게 지냈다. 미국내 한인교회의 여성도들의 모임을 10여년전 처음 아이와 같이 갔었는데, 만3살이었던 J가 미국에서 살며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것을 보며 많이 분들이 똘똘하다며 칭찬을 하셨다. 개중에는  ‘J가 자라면서 엄마의 자랑이 되게해주세요’라고 기도해주시는 분도 계셨는데, 체면치레 하며 교회를 다니고 있던 내게는 그 솔직한 기도가 신선하기도 하고 뭔가 부끄럽기도 했다. 아마 아이를 내 인생의 목표로 두고, 아이의 성공을 나의 성공과 동일시 하는 엄마는 not so cool하다는 사회적 목소리에 동의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나인데, J를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마음이 벅찰때가 자주 있다. 엄마의 자랑이 아니라,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줘서라는 것을 나는 안다. 동생이 호스피스에 들어가게 되었을때 J는 만2살 반쯤 되었는데, 우리는 미국으로 막 이민을 와서 이리 저리 적응을 하고 있을때이기도 했다. 남편은 일정을 맞춰야해서 나와 J만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호스피스의 숨길수 없는 무거운 공기를 J는 율동과 (너무 울어서 쉰목소리를 동반한 ) 고음불가 목소리처리로 ‘싹트네’ 노래를 불러주며 누그러뜨려 주었다. 외삼촌도 끝까지 웃는 눈으로 첫조카를 바라보았다. 웃을 수 없었던 그 병동에서의 우리가족은 J를 핑계로 웃고 노래했다. 동생이 떠나고 아무도 위로할 수 없던 친정부모님의 마음을 J는 매일 자잘한 일상으로 함께하며 시나브로 녹여갔다. 그 무엇도 J가 의도하거나, 심지어 노력한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J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위로이자 고마움이다.

이런 마음이 바탕에 있어서 그런지, 나는 J의 모든것이 기본적으로 참 좋다. 그 아이가 한 행동 자체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J가 그렇게 하기때문에 좋다. 아이를 ‘잘’키우는 기준이야 워낙 다양하니 무어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J를 키우며 풍성하고 넘치는 사랑과 위로를 느끼고 있다. 아이가 나에게 주는 이 모든 순간을 엄마인 나는 마음에 곱씹으며 두고두고 기억하고 꺼내어 본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누가복음 2장 19절) But Mary treasured up all these thing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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