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플 때가 가장 많이 싸우지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비염인 줄 알았다. 병원에서도 목은 붓지 않고 비염만 있으며 환절기에 흔히 나타나는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기침을 해도, 그냥 어린이집에 보냈다. 어린이집은 활동이 많다. 산도 오르고 들도 걷는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활동량이 많다. 뜀박질도 좋아해서 어린이집에 가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러다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밤, 아이가 밤새 기침을 했다. 열은 없긴 했는데, 그래도 새벽 5시까지 나도 아이도 거의 자지를 못했다. 그러다 5시에 거의 혼절하듯이 잠을 잤다. 일어나니 8시. 준비하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시간인데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대로 재워야 하나, 아니면 깨워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나.
아이는 어린이집을 좋아한다. 생각 같아서는 재우고 싶었지만, 만약 자기가 일어나서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울고불고 난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러면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의 옆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린이집 갈래, 쉴래?"
대답이 없으면 그냥 재워야지. 이렇게 작게 이야기했는데 안 들리겠지. 생각했는데 아이는 귀신 같이 그 말을 듣고 대답했다.
"갈래!"
나는 아이를 깨워서 준비를 시켰다. 다행히 가는 길에는 기침을 별로 하지 않았다. 낮에도 기침은 많이 안 했다고 했다. 그 저녁에는 교회에서 하는 셀모임이 있었고, 나는 원래 가지 않을까 했는데 셀원 중 한 명이 김치전을 해 온다고 해서 갈등에 빠졌다. 아이는 크게 아프지 않아 보였고, 김치전도 먹고 싶었기에 나는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연락을 드렸다가 조금 늦게 셀모임을 가게 되었다.
셀모임은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하는데, 도착한 집에는 선풍기를 틀어놓아서 약간 선선했다. 그런데 선풍기 앞에 앉은 아이가 조금 후에 춥다고 했다. 선풍기를 끄고 나서도 춥다고 해서 그 집에 있는 담요를 덮어 주었다. 왜 자꾸 춥다고 할까. 나는 그때까지 아이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셀모임이 끝날 때쯤 되어서야, 한 분이 아이의 이마를 짚더니 이렇게 말했다.
"열 나는 거 같은데?"
나는 놀라서 아이의 이마를 짚었고, 뜨거운 기운이 감지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 열을 재보니 38.8도.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다행히 바로 열이 떨어졌다. 아이를 재우고 남편에게 상황을 공유하자 남편이 말했다.
"셀모임 가서 그런 거지?"
그 말은, 내 죄책감을 짓누르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서 속상한데, 셀모임에 가서 그렇게 되어서 마음이 안 좋은데 직접적으로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마 몰라서 그런 거다, 남편 성향상 이유를 알고 싶어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대답했다.
"그건 모르지."
모든 병의 원인을 어떻게 알겠나. 나는 그렇게만 답하고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는 등원하지 못했다. 열은 38도로 떨어졌으나 그래도 쉬게 해 주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되었다. 토요일에 남편은 교회에서 하는 1일 수련회가 있어서 가게 되었다. 남편은 몇 번을 망설였다. 그러나 나는 가라고 했다. 예배 시간에 늘 딴짓만 하는 남편이 그런 데라도 가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일 수련회는 하루에 모든 것을 다 끝내기에 아침 일찍 시작해서 밤 늦게 끝난다. 그러니 하루종일 남편은 집에 없고, 나는 금요일에 이어 토요일에도 온전히 아이와 보내야 한다. 나는 마음을 다졌다. 절대로 마음 상하게 두지 말고, 마음을 다잡고, 그리고 괜찮다는 생각을 백 번쯤 하자. 그래도 입원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래도 너무 심하게 아파서 정신 못 차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래도 밥을 못 먹거나 못 걷는 것보다는 낫잖아. 기침을 심하게 하고 열은 계속 38도인 것을 제외하고 아이는 잘 먹고 잘 놀았다. 배변도 이상이 없었다. 계속 놀아달라고 해서 귀찮은 것 빼고는, 끼니 챙기는 것 빼고는 힘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남편이 왔다. 나는 힘든 내 자신을 달래고자 밤에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켰다. 얼마 전에 돈을 좀 벌기도 했으니,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다. 남편이 배달 시키는 건 몰랐으면 싶었는데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배달시키는 것을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나는 배달을 시키는 게 눈치가 보인다. 내 돈으로 시키는 것인데도 그렇다. 아무튼 제대로 들켰지만 나는 그냥 '오늘 너무 힘들어서 배달을 시켰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물었다.
"이거 얼마정도 해? 15000원 정도 하나?"
(놀랍게도 정확히 맞추었다.)
"그렇지, 그 정도 하지."
"돈 아껴야 해. 내년에 나 휴직할 거란 말이야. 그러면 돈이 없어."
하루 종일, 아니 어제부터 혼자 애를 본 내가, 내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려고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시켰는데, 남편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나? 아니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마음으로 이걸 시켜서 먹는지를 모르나.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달라고 해서 조금 주었다.
밤에 아이가 심하게 기침을 했다. 열을 재보니 38도. 병원에서 그 정도라도 해열제를 먹이라고 해서 마침 일어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는데 남편이 나왔다.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그날 셀모임 가서 그렇게 된 거지?"
그 말을 남편은 목요일에도 했었다.
"모르지. 그런데 원래 열 나는 건 며칠 잠복기 있어. 바로 그렇게 열이 나진 않아."
"그래도 셀모임 안 갔으면 안 그랬던 거지? 셀모임 가서 그런 거지?"
나는 그가 오늘 1일 수련회에 가서 '아내에게 얻어맞는 법' 강의라도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안 그러면 사람이 이럴 수가 없는 거다.
"근데 기침이 나는 게 비염 때문이지?"
그는 끝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응."
"비염은 누구 때문이야? 누구한테 유전된 거야?"
"아마 나겠지. 내가 비염이 있으니까."
"그러네. 엄마 때문에 유전이 됐네. 그래서 저렇게 환절기마다 아픈 거네."
그런 당신은 누구한테 유전이 되어서 그렇게 정신이 아픈가. 차라리 나나 아이처럼 몸이 아픈 게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