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지쳐버렸다.
아이는 삼 일 동안 열이 났다. 그리고 아마 다음 날도 날 예정이다.
어제였던 토요일에 남편은 교회에 1일 수련회가 있어서 하루 종일 나가 있었고, 아이가 아픈데도 나는 남편을 보내주었고 그것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내가 터진 것은 일요일인 오늘 밤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은 아이 저녁도 차려주고 해서 조금 쉴 수는 있었다. 밤이 되었고 아이는 자려고 누웠다가 기침이 터져 나와서 잠도 못 자고 자꾸 토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물을 먹이고, 토할 것 같다고 해서 화장실을 두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
거실에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와 함께 분주하게 화장실을 오가고 물을 먹이는 동안, 그리고 아이가 목이 터져라 기침을 하는 동안 남편은 우리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좀 놀다가 잠들었다. 그러나 나는 화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왜, 대체, 남편은 내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을까. 내가 아이를 데리고 동동거리는 동안에 왜 남편은 나의 마음을 아는 척도 하지 않는가. 그저, '괜찮으냐' '내가 뭐 도와줄까.'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라.' 이런 말이라도 했으면 나는 이토록 서운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고민하다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싸우는 것은 원치 않았으므로, 나는 그저 기분이 나쁘고 서운했다는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그제야 수고했다는 카톡을 남겼다. 그런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잘 넘어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잘 자던 아이의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해열제는 충분했으나 열이 많이 나는 경우는 서로 다른 성분의 해열제로 교차 복용을 해야 하는데 교차 복용할 해열제는 없었다. 나는 혹시 남편이 알까 해서 남편이 자는 방으로 가서 물었다. 교차 복용할 해열제가 있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심드렁한 태도로 답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거기에서 참았던 감정이 또 터졌다.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나만의 몫인가.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오전까지 쭉 아이를 케어한 것은 내 몫이었다. 아이 밥을 챙기고 약을 챙기고 열을 재고. 물론 아이가 쳐지거나 진짜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니었기에 수월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어린이집 등원도 시키지 못하고 그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참았다. 그런데 아이가 기침을 해도 휴대폰만 보고 있는 것에 뒤이어, 아이가 밤에 열이 나는 것 같다고 교차 복용할 해열제를 찾는 내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라니.
같이 찾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이가 열이 나서 어떡하냐.' '밤에 혼자 볼 수 있겠냐.' '내가 내일 일찍 출근이라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밤에 고생하겠다.' 이런 말 한 마디라도 해 주었으면. 아니면 같이 찾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나는 모르겠는데.' 라고 그냥 그 말 한 마디라도 했으면 이토록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니. 그 말은, 내가 모른다는 말에 더해서 모르는 내게 그걸 왜 묻느냐는 책망까지 더해진 말이 아니었던가.
워낙 상황에 맞는 말을 잘 못 해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나에게도 여러 번 책망을 듣기도 했던 남편이었지만 정말 이번 경우는 심했다. 나는 작심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되지 않냐고. 왜 그렇게 표현하냐고. 정말 너무 서운하다고. 그랬더니 남편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래도 오늘 아이 보지 않았냐, 저녁은 챙겨 먹이지 않았냐, 그런 너는 왜 애 저녁은 챙기지 않았냐, 왜 내가 한 것이 있는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 토요일 1일 수련회를 네가 가라고 하지 않았냐, 그래놓고 왜 이제와서 그러냐.
나는 전혀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그를 향해서, 그런 말이 아니라고,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두 가지라고, 하나는 아이를 데리고 전전긍긍하던 나를 보고 휴대폰만 하던 것이고, 두 번째는 교차복용 해열제를 찾는 내게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말하던 것이라고. 그 두 가지의 태도가 서운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 자신이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항변하면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의 마음이 안 그렇다는 것을 안다고 말해주었다.(솔직히 그렇게 생각은 안 하지만 자꾸 억울하다고 하니까.) 그래도 남편은,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낫느냐면서, 그러면 자기도 앞으로 행동으로 보이지 않고 말만 하겠다고 했다.
전혀 내 말을 알아듣지 않고 다른 소리를 하는 그가 답답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공격당하는 상황이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엉뚱한 변명을 하면서 자꾸만 논점을 흐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토요일에 수련회까지 보냈으면 그것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기분이 상하고 서운해도 끝까지 참았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차라리 내가 애를 보고 네가 수련회를 갔어야 했어."
그놈의 수련회. 나는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 답했다.
"그러면 반대의 상황이 되지 않았겠어? 오빠가 열심히 애를 보고, 나보고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뭐라고 했겠지. 왜 돕지 않느냐고. 그러면 나는 오빠가 다 한다고 했으면서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 그랬겠지?"
그것은 이제까지의 패턴이었다. 남편이 하겠다고 하고 애를 볼 때에, 나는 오늘의 남편만큼이나 무심하게 대했다. 굳이 자신이 다 짊어진다는 데, 거기에 내가 왜 희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남편이 답처럼 말했다.
"내가 다 너한테 배운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정말로 '할 말'이 아무것도 없어서, "아 그래. 알겠어. 잘 자."하고 방을 나와 버렸다. 남편이 뭐라뭐라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신경쓰지 않았고, 남편도 지금은 자는 듯하다.
저 말을 던지고 남편은 편할까? 나는 저 말을 듣고 오히려 편하다. 왜냐하면, 남편이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버렸으니까.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에게 배운 것이므로, 결국 내가 잘못했다는 건데 그것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결론이다. 거꾸로 남편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 당시의 나도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그때에 남편은 나에게 얼마나 잘못했다고 몰아쳤는가.
아무튼 저 말까지 나온 상황에서 잘잘못 논쟁으로 소모전이 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기에 방으로 돌아왔다. 오니까 슬퍼지면서 눈물도 났다. 그런데 글을 다 쓴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좀 더 차분해졌다. 휘둘리지 말아야 겠다.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에 막혀서 진짜 대화를 잃어버리지는 않아야 겠다. 나는 진짜 대화를 하고 싶다. 서로 다투면서 소모전으로 가는 대화가 아니라, 자잘못을 따지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며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남편과는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있었더라도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는 남편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결국 그 행동을 나에게 배웠다는 말을 해댔다. 차라리 남편이, 나도 이러한 노력을 했는데 잠깐 쉬려던 차에 그런 소리를 들어 서운했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면 나도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남편에게 말을 하는 스킬이 부족했던 것 같다. 먼저 잘못을 지적하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 남편도 방어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차라리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남편의 행동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고 말을 했으면 달라졌을까.
기본적으로 그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읽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하지 않으려는 것'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뭘 이야기해도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가 나오면서 방어를 하니까 거기에 대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그의 시선은 나에게 닿지 않고 그의 말은 제 몸만을 싸고 돌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만의 잘못일까. 어쩌면 십 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숱하게 그의 잘못을 지적해 왔던 나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고쳐보려고 노력해 보려고 하다가 그도 지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방어막을 풀기 위해서 나부터 방어막을 해제하면 어떨까.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오히려 더 잘 풀릴 수 있다고 내가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엉망으로 대화가 끝나 버렸지만 내일의 대화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대화가 서로를 공격하는 칼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주는 손길이 되기를. 내일의 나는 기대해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