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먹는 행복한 시간

산골에서 봄나물을 맛보다

by 정석진

저녁 늦은 시간에 진안 산골을 찾았다. 비 온 후라 기온이 급강하 했다.도심 조명이 없는 깊은 산중이라 어둠을 칼로 베어낼 수 있을 만큼 깜깜했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바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누나가 미리 데워 놓은 전기장판이 주는 아늑함에 곧바로 누워 따스함을 즐긴다. 여행으로 피곤한 몸을 대충 씻고 꿈나라로 직행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밖에 서리가 내렸다. 마당에 주차된 차 유리창에 성에가 두껍게 끼었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다시 겨울이다. 그간 따뜻했던 날씨에 파릇하게 자라나던 풀들이 모두 다 얼음 땡이 된 듯 얼어붙었고 해맑던 노란 민들레 꽃들도 동결이 되어 빛을 잃고 초라한 모습이다. 모든 것들이 마치 마법에 걸린듯 순식간에 겨울왕국이 되었다.

얼어버린 쑥

하지만 신기하게도 주변과는 무관하게 벚꽃은 활짝 피어 있다. 늦게 봄이 찾아오는 고원이어서 다른 곳에서는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만나니 시간을 되돌린 것 같다. 주위가 온통 영하의 날씨로 을씨년스러운데 의연한 모습으로 만개해 더욱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그 와중에 돌틈 사이에 자라는 돌나물은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웬만한 녀석들은 다 날씨 따라 백기를 들고 항복했는데, 낮은 땅에서 조용히 사는 돌나물은 찬기운에도 변함없이 싱싱하고 파랗다. 단단한 육질을 가져서일까? 기운찬 모습이 참으로 기특해 보인다. 외유내강을 본다.

돌나물

봄이 오는 길목에서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바로 춘곤증이다. 봄이 되면 괜히 기운이 없고 하품이 계속 나오고 늘 졸리다. 이 춘곤증을 몰아낼 비방이 있는데 바로 봄나물이다. 언 대지를 뚫고 특유의 생명력으로 기운차게 자라는 봄나물들은 대지의 정기를 머금고 있다. 봄에 우리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푸성귀들은 자연이 내어주는 영양의 보고다.


돌나물을 한 바구니 뜯어서 정갈하게 다듬었다. 시골 사는 누님은 돌나물을 살살 물에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뺀다. 그리고는 직접 담은 된장과 갖은양념을 곁들여 살살 무쳐낸다. 서울에서는 돌나물을 그저 생으로 초장에 찍어 먹지만 제대로 맛을 보려면 된장으로 무쳐야 한다. 물론 서울에서 파는 돌나물은 재배해서 깊은 맛이 없고 밍밍하고 무르다. 하지만 거친 야생에서 온갖 풍파를 이겨내 뚝심을 가진 돌나물은 육질이 단단하고 야무지다.


자갈밭에서 달래도 몇 뿌리를 캐왔다. 튼실하게 자란 달래는 거의 쪽파만큼이나 굵다. 달래를 쫑쫑 썰어서 되직하게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달래장을 만들었다. 조금씩 숟가락으로 떠다 고슬하게 지은 쌀밥에 얹어 비벼 먹으면 별미가 따로 없다.

달래

사실 이 시기에는 봄부추도 먹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꽁꽁 얼어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홍합으로 국물을 낸 미역국과 그 전에 담아 살짝 익은 쪽파김치와 손수 갈무리하여 건조한 통통한 조기가 봄나물과 함께 올라 근사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마음이 흐뭇하다. 먼저 돌나물 무침에 손이 간다. 한 젓가락 가득 집어 입안에 넣어 본다. 된장의 깊은 맛에 아삭한 식감이 환상이다. 봄철 시골에 오면 맛보는 별미에 밥 한 그릇이 뚝딱 사라졌다. 당연히 한 그릇 추가는 말이 필요 없는 덤이다. 여기에 두릅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는 황홀한 만찬이 될 텐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봄을 먹는 행복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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