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벗어나기

나로서 존재하기

by 장 Tony

난 나를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럴 법도 하다. 내 삶의 진자가 그리는 궤적은 사회가 권장하는 ‘정상’의 범주 안에서만 운동했으므로.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1인분 혹은 그 이상의 몫을 하는 사회인이 되는 것. 이상적인 삶을 위해 나는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되었고, 여러 가르침을 내재화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사회가 주입한 철칙, ‘정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학창 시절부터 의대를 졸업할 때까지 선배들이 몇 번이고 강조했던, 튀지 말라는 말. 어느 순간 그런 가르침들은 단순한 격언을 넘어서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작년에 터진 의정갈등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비합리적인 정책 추진, 그에 대한 집단행동, 그리고 “환자를 버린 의사”라는 프레임. 기득권이니, 특권층이니, 밥그릇 싸움이니 하는 말이 떠돌았고, “의주빈”, “의룡인” 같은 혐오 단어가 매체를 도배했다. 네티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독설을 던졌다. 그에 대한 의료계의 항변도 미숙했다. 이해관계가 다른 의사들이 내는 상반된 주장이 난립해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다. 의협의 대응도 아쉬웠다. 혼란 속의 회원들에게 가이드라인 제시하기, 국민 설득하기, 도움이 필요한 사직전공의들에게 지원하기 등등. 필요한 일들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고, 의정갈등을 촉발한 실제 이유는 난장판 속에서 가라앉았다.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자문했다. 남들보다 긴 시간과 비싼 학비를 투자했고,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졸업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데, 모아둔 돈도 없는데 어째서 내가 기득권인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했을 뿐인 나에게 그런 딱지가 붙는다는 게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의사 직역을 향한 수많은 비난이 나 개인에게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서의 파고가 미친 듯이 오르내렸다. 한동안은 분노했고, 이후엔 우울했으며, 결국 무력함에 사로잡혔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전공의가 병원을 뛰쳐나와 동네 의원에 취직했기에 일반의 일자리가 없었다. 이제 막 의사 면허에 익숙해질 무렵의 나에겐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고, 수십을 넘어 백 통이 넘는 이력서를 돌려도 연락이 오는 곳은 한둘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직한 전공의 뽑아다 쓰면 되지, 굳이 인턴 과정도 마치지 않은 의사를 고용할 병원은 없었다. 어떻게 해도 일을 구하지 못한 나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곤 했다. 쓸모가 없다는 감각, 무가치한 기분이 날 짓눌렀다. 베개와 시트에는 어느새 퀴퀴한 냄새가 배었다. 그런 날 보다 못한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말로만 투정 부리지 말고 뭐라도 좀 행동으로 옮겨봐라.”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움직였다. 친구들, 동료 의사들, 간호사, 비의료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고 치우쳐져 있었는지 느꼈다. 모든 사람이 의사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다는 당연한 사실도, 소수의 극단적인 의견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인터넷의 특성에 내가 참 많이도 휘둘렸었다는 점도 깨달았다. 보습 학원 아르바이트나 쿠팡 상하차 등, 여러 단기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경험하기도 했다. 의대-병원이라는 좁은 사회에서만 있다가 만난 다른 세상에서, 스스로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를 실감했다.


여러 경험을 겪으며 내 세계를 확장해 나가던 중, 깊이 골몰했던 주제가 있었다. 왜 과거의 나는, 의사 직역에 가해지던 편견 어린 시선들과 비난에 대해, 마치 나 개인이 그런 것들을 받아내는 양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일까? 의사는 내가 속한 하나의 직업일 뿐인데,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뱉었던 부당하거나 편중된 의견에 왜 그리도 갈대처럼 흔들렸을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 책도 읽고 상담도 받으면서 이유를 알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어렴풋하게만 느낌이 올 뿐, 정확한 이유가 떠오르진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아버지와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 넌 내가 깔아준 레일을 따라 달려온 것뿐인데.”


내가 깔아준 레일이라. 돌이켜보면 내 하루 일과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소관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학원과 자습실로 갔고, 빽빽한 일정표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20년 가까이 수동적으로 살아왔으니, 의대에 들어간들 갑자기 자주적인 사람이 될 리 없었다.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자아는 왜소해지고 자존감은 약해졌다. 그나마 의사 면허를 따고 나서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했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적 성취, 혹은 트로피만이 자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던 거다. 그러니 의사에 대한 공격이 내 정체성, 자아를 향한 공격처럼 느껴졌던 것일 테다.


이제는 안다. 여태 내가 나라는 개인으로서 자립할 여지가 충분치 않았음을.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고, 타인의 시선 앞에 위축되어 있었으며, ‘정상’에 맞추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을. 하지만 타인의 말은 날 규정하지 못한다. 이걸 깨닫는 데 참 오래 걸렸고, 고통스러웠다. 다만 그 시간이 아깝진 않다. 어떠한 상처라도 쓸모없는 흉터로만 남지 않으므로.


지금은 ‘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글쓰기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변 의사들의 주된 관심사인 투자나 골프, 부동산 같은 것보단 문학에 대해서.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점차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이 가끔 어색하지만 나쁘진 않다. 오늘도 한 걸음 더, 스스로 선택할 힘을 기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