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제주의 그라운드, 1루. ep7.
차례.
프롤로그.
서울의 외야석
- 원아웃
- 투아웃
제주의 그라운드
- 1루
- 2루
- 3루
다시, 웃기는 외야석
에필로그, 홈.
연습은 매주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이렇게 세 번한다고 했다. 일요일엔 주변 팀들과 시합도 한다고 했다. 야구단 인원은 우 실장을 포함해서 총 열두 명. 나이도, 직업도 뒤죽박죽이었다. 평일 오후 이렇게 한량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조그만 신문사에 다녀, 형.”
첫 연습 때 양승필을 떠보니 녀석이 대답했다. 믿기지 않았다. 설마 이 녀석이 기자라니?
“그럼 회사에는 뭐라고 하고 나오는 거야?”
“뭐래긴. 그냥 슬쩍 나오는 거지. 여긴 정해진 기사만 쓰면 더 이상 터치가 없어, 형.”
우 실장의 물음에 양승필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딴따라 같은 언론사군. 우 실장은 생각했다. 하긴 지역의 영세한 언론사가 오죽할까.
서울에서 상대했던 중앙지 기자들이 생각났다. 다들 빈틈없는 모습으로 특종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였다. 상대의 빈틈을 발견하면 물어뜯었다. 인정사정없는 무리였다. 거기에 비하면 이런 놈들은 기자라고 부르기에도 아깝다.
“피자나 한번 먹으러 와, 헤헤.”
양승필의 단짝인 고병규라는 녀석의 말.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입술도 두꺼워서 꼭 열대 지방 원주민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하지만 꼴에 빵을 만드는 파티시에라고 했다. 양승필과 달리 말수는 적지만 항상 웃고 다녀서 눈 옆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바닷가에서 조그만 피자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래, 형. 언제 운동 끝나고 같이 먹으러 가자. 맛이 끝내주거든.”
양승필이 자기 가게인 양 으스댔다. 우 실장은 뽀로통하게 흥, 하고 대답했다. 맛있어봤자 시골의 삼류 피자집. 이 녀석들은 우 실장이 얼마나 미식가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래 봬도 회사에서 회식 메뉴를 정할 때 자문을 하던 입장이다. 부서에서 회식을 할 때면 김 부장이나 정 주임이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메뉴에 대해 물어봤다. 우 실장은 여러 가지 취향을 고려해서 추천했다. 물론 다들 그날의 선택에 대해서 찬사를 보냈다. 일부 싹싹한 직원은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피자도 이탈리아 정통 피자를 먹어본 사람이다. 유럽 출장길에 고객을 모시고 그쪽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주재원이 예약했고 우 실장은 영업을 담당했다. 물론 고객에게 아부를 떠느라 피자 맛이 어땠는지 기억은 없다. 다만, 피자헛 같은 곳과는 좀 다르다, 정도의 느낌은 기억하고 있다.
양승필과 고병규 콤비는 우 실장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 실장의 오른쪽과 왼쪽에 딱 붙어서 친한 척을 했다. 이런 얼간이들과 어울릴 군번이 아닌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 콤비는 뭔가 언밸런스하다. 한 놈은 지나치게 말이 많고 한 놈은 헤헤거리면서 웃기만 한다. 생김새도 다르다. 시골 촌놈과 아프리카 원주민이다. 둘이 어울리면 뭘 하고 놀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녀석들이 친구랍시고 붙어 다니는 게 신기했다. 하긴 바보라는 공통점이 있긴 했다.
다른 멤버들도 신기한 인물들 투성이었다. 어디서 이런 인종들만 모아 놓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오라방, 너무 노장인 거 아니야?”
이건 또 다른 여자 매니저의 말.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보라색으로 제멋대로 염색해 버렸다. 화장은 원래 안 하는지 피부가 거칠었다. 대신 각종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나이는 몇 살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는 짓은 어려 보였는데, 또 어떻게 보면 나이가 많아 보였다.
“형, 우리 팀 세컨 매니저. 성격이 여간이 아니니까 조심해야 돼.”
“매니저라니. 엄연히 선수라고, 선수. 지난번에 나한테 한방 얻어맞은 주제에.”
양승필에게 주먹을 쥐면서 눈을 부라렸다. 이름은 라봉이라고 했다. 별명 같은 걸로 보였는데 모두 라봉이라고 불렀다.
“근데 오라방, 여기 제주엔 대체 웬일이래? 어디 서울에서 도망이라도 치신 건가?”
우 실장을 보면서 무람없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더니 우 실장의 귀에 속삭였다.
“사실 나도 서울에서 도망쳤거든. 서울 집값이 워낙 비싸야 말이지. 안 그래?”
그러면서 우 실장의 어깨를 툭 쳤다. 너만한 딸이 있는 사람이다. 우 실장은 속으로 항변했다.
그때 라봉 뒤에서 누군가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고병규였다. 뺨이 빨개지더니 라봉을 애타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흠, 저 녀석… 설마 이런 왈가닥을 좋아하는 건지. 묘한 기류가 흘렀다.
머리를 길게 기른 녀석도 눈에 띄었다. 우 실장처럼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눈이 풀린 게 딱 봐도 한량이었다. 생긴 것처럼 야구 연습은 뒷전이고 혼자 이런저런 들풀을 보다가 꽃을 꺾고 다녔다. 꽃을 들곤 혼자 흐흐 거리면서 웃기도 했다. 실성한 모양이었다. 꼴에 결혼은 한 모양인데, 이런 놈과 결혼한 부인이 걱정될 정도였다. 이름은 김만정이라고 했다. 이름도 이상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보다 더 이상한 사람은 감독이었다. 다들 곰 감독이라고 불렀는데, 별명처럼 곰같이 덩치만 커다란 영감이었다. 명색이 감독이라면서 항상 벤치에 앉아 혼자 졸고 있었다. 하긴 저런 영감탱이한테 야구를 배운다니. 본인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한 번은 뿡 하고 방귀 뀌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범인이 분명해 보이는 곰 감독은 막상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침을 떼고 그라운드를 쏘아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들 못 들은 척 운동을 하고 있었다. 곰 감독은 컨디션이 좋다는 듯 다시 한번 뿡 하고 방귀를 뀌었다.
이후에도 곰 감독은 대놓고 방귀를 뿡뿡 거리는 만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 실장을 제외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세상의 끝이로구만. 우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양승필, 고병규 콤비와 한 조가 돼 연습을 시작했다. 셋이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했다. 양승필, 고병규 콤비는 그래도 해본 가닥이 있어 폼이 제법이었다. 공도 우 실장이 딱 받기 좋게 던져줬다.
“형, 근데 야구는 좀 해봤어?”
양승필이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녀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 녀석은 우 실장 같은 프로 레벨의 공은 처음 볼 테지.
“뭐, 조금. 조금 했지. 일단 공부터 받아봐.”
우 실장은 양승필에게 말하고 사악하게 웃음을 지었다. 한번 전력투구를 해보기로 했다. 우 실장의 공을 받고 깜짝 놀라는 양승필의 얼굴이 그려졌다.
하지만… 우 실장의 공은 양승필의 옆으로 한참 빗나갔다. 이럴 리 없다. 다시 폼을 가다듬었다. 양승필의 글러브를 향해 공을 뿌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은 양승필의 옆으로 빠졌다.
양승필이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뭐야, 형. 완전 초보구나. 하하하.”
대체, 왜. 분명 가운데를 보고 던졌는데 오른쪽으로 한참 빗나갔다. 아무리 오랜만에 공을 던지는 거라지만 충격이었다. 양승필은 정식으로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코치를 자처했다.
“아, 형. 힘을 빼고 던져야지.”
공이 잘못 날아갈 때마다 양승필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저런 놈에게 잔소리를 듣다니. 분한 마음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신경을 쓸수록 공은 더 크게 빗나갔다. 제구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대체 내 몸이 어떻게 돼버린 건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운동과 담을 쌓긴 했다. 운동할 여력이 없었으니까.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지다니.
“형, 생각이 복잡해지면 제구가 지저분해져. 심플하게 생각해.”
양승필은 신이 나서 잔소리를 했다.
결국 캐치볼을 포기하고 수비 훈련을 했다. 하지만 수비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동안 순발력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예전이면 여유 있게 잡을 공을 그라운드를 뒹굴며 놓쳤다. 덕아웃에선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저런 한심한 무리들이 뭣도 모르고 비웃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섞여있는 미선이 웃는 것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형, 아무래도 코치님한테 특별 지도라도 받아야겠네.”
양승필이 위로를 한답시고 말했다.
“좋아. 그 코치님이 누군데?”
우 실장은 모자를 눌러쓰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당분간 이를 악물고 연습을 하는 수밖에. 미선이 비웃는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공을 던진 오른 어깨가 뻐근해서 허공에 휘이 돌려봤다.
“저예요!”
낭랑한 목소리가 우 실장의 뒤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본 우 실장은 잠시 멍해졌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아들 녀석, 그러니까 한철이 뒤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장기 투숙객이니까 특별 지도해 드릴게요.”
한철이 눈을 찡긋하면서 말했다.
“아, 나는….”
우 실장이 멈칫거리자 양승필이 등을 떠밀었다.
“형, 이런 기회 흔치 않아. 쟤는 여기서 최고거든. 프로라고, 프로.”
양승필이 자랑스럽다는 듯 속삭였다.
한철은 이곳에 있는 고등학교 야구부에 속해 있었다. 올해 졸업반으로 프로에 진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한철의 담당은 투구와 송구, 그리고 펑고였다. 야구부에 속한 한철은 야구단에서 제법 대접을 받았다. 여기선 선수출신, 즉 ‘선출’이라고 불렸다.
“그럼 당장 시작하죠. 여기 글러브요.”
한철이 갑자기 우 실장에게 글러브를 던지고 맞은편으로 뛰어갔다. 우 실장은 기우뚱거리며 겨우 글러브를 받아냈다.
“자, 갑니다.”
한철이 소리를 지르더니 우 실장을 향해 공을 던졌다. 한철의 폼은 꽤 그럴듯했다. 우 실장은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공을 받았다.
한철과 얼마 만에 캐치볼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성인이 된 한철이 공을 던지는 모습 자체를 처음 본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엔 한철이 시합하는 걸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한철은 그런 아빠가 서운하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다른 아빠들은 응원 오는데 왜 우리 아빠는 오지도 않는거야? 응? 하지만 그럴수록 우 실장의 마음은 싸늘해졌다.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고 공부를 했으면 했다. 한철이 연습하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대신 야구 수치로 아들을 분석해 봤다. 어차피 안 될 거야. 우 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철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한철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 실장을 봐도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우 실장도 아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다. 부쩍 커버린 아들이 불편했다. 어쩌다 밥상에서 마주 앉아도 냉랭했다. 침묵이 두려워 입을 열면 언제나 잔소리로 이어졌다. 그럴수록 일에 파묻혔다. 최소한 직장에선 내 자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집에만 오면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내가, 우형진이 그럴 리가.
그렇게 어색했던 아들과 마주 보고 서 있다. 한철의 얼굴을 봤다. 밝은 표정이다. 저런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아기였을 땐 잘 웃던 아이였는데.
“아저씨, 갑니다.”
한철이 공을 던졌다. 우 실장은 왼손을 뻗어 공을 잡았다. 딱 우 실장이 잡기 좋은 위치였다. 캐치볼은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하는 것이다.
“자, 이번엔 아저씨 차례예요. 여기 글러브는 신경 쓰지 말고 저를 보고 힘껏 던지세요. 제가 다 받을게요.”
한철이 글러브를 팡팡 치면서 말했다.
든든했다. 어디로 던져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든든함이다.
그래, 그렇다면.
힘껏 공을 던졌다. 공은 한철의 가슴팍에 팡 하고 꽂혔다.
“나이스 볼.”
한철이 외쳤다. 우 실장이 던진 공이 한철에게 닿았다. 뭔가 뭉클했다.
“나이스 볼.”
뒤에서 지켜보던 미선과 양승필, 고병규도 박수를 쳤다. 코끝이 찡해졌다. 이 정도가 뭐라고. 괜스레 모자를 눌러썼다.
한동안 한철과 캐치볼을 했다. 한철의 투구 폼을 봤다. 좋은 폼이다. 그랬나, 저 녀석. 꽤 괜찮은 폼을 가지고 있었구나.
우 실장은 한철을 따라서 공을 던졌다.
“나이스 볼. 아저씨, 잘한다!”
공을 던질 때마다 한철이 추임새를 넣어줬다.
오랜만에 격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잘한다, 는 말. 정말 아득한 말이다. 항상 긴장하면서 살았다. 격려는 바라지도 않았다. 실수를 해서 욕을 먹지 않는 게 직장 생활의 목표였다.
한철과 음료수를 들고 외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운동을 했더니 몸이 뻐근했다.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앉아 파란색 포장의 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그라운드에선 다른 사람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깡! 배트로 공을 맞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야구장 최고 명당이에요.”
한참 그라운드를 보던 한철이 말했다.
“한눈에 그라운드가 보이잖아요. 뭔가 여백도 있고. 여백이야말로 야구의 매력이죠.”
한철의 말을 음미했다. 글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외야석에선 수비수들 뒷모습밖에 안 보였다.
“그래도 기왕이면 좋은 자리에서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비싼 자리는 다 이유가 있다고. 이런 자리는 지루하잖아.”
한철에게 항의해 봤다. 한철은 씩 웃더니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지루함. 그게 바로 야구의 매력이거든요.”
지루함이 매력이라니. 희한한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우 실장은 잠시 한철의 말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음료를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