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 내게 말을 걸어줄까”
“나, 또 지웠어.”
“이번엔 정말로 그만하려고.”
“근데… 어제 다시 깔았어.”
친구 혜진의 말은 늘 그랬다.
결국엔 다시 설치하고, 다시 로그인하고,
프로필을 다시 한 번 다듬고 있었다.
새로운 사진 한 장, 짧은 자기소개 문장 몇 개.
그녀는 ‘연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실은, ‘마음 한쪽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중’이었다.
혜진은
이혼 후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웠고,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한 뒤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 사람이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퇴근 후엔 혼자 밥을 먹고,
밤엔 거실 소파에서 TV를 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데이팅앱을 연다.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내가 아직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거든.”
사실 그녀가 그 앱에서 만난 이들은
‘연인’이라 부를 수 없는 관계였다.
한동안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다 사라진 사람,
세 번 만나고 연락을 끊은 사람,
너무 잘해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앱을 지우지 못했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내가 누군가의 관심 안에 있다는 거…
그게 위로가 돼.
다 필요 없고, 그냥 대화라도 있으면 덜 외롭거든.”
그녀의 말은 애틋했다.
사랑을 원했다기보단,
소속감과 연결을 원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앱 속의 그 사람과 실제로 두 번 만났던 일이었다.
그는 정장을 입은 부드러운 인상이었고,
초반엔 참 다정했다.
커피를 사주고, 웃으면서 아이 이야기를 들어줬다.
“우린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가 말한 날, 혜진은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고 했다.
그런데, 세 번째 약속을 잡으려 했을 때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혜진 씨, 혹시 나한테 너무 기대하는 건 아니죠?”
그 말은 칼처럼 박혔다.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은 애정이 오고 간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는 그날 이후 연락을 끊었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이
늘 상대방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답장이 오면 하루가 밝아지고,
답장이 없으면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왜 나는 자꾸만 기다리는 사람이지?”
“왜 나는 이 앱을 지우지도 못하면서, 사랑받길 바라지?”
자신의 기대와 감정이
상대에게 가볍게 소비되는 걸 볼 때마다
그녀는 조금씩 무너졌다.
데이팅앱은 단순한 연애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고립된 사람에게
마치 ‘열린 문’처럼 느껴진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렀다.
누군가가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짧은 연결은,
오래된 외로움에 조용한 위로를 준다.
그리고 중독처럼 되풀이되는 습관이 된다.
혜진은 스스로 말했다.
“나는 이 앱이 만든 회피적인 나를 알아.
용기 내서 다가가질 못해.
그러면서도 누가 다가오길 원하지.”
혜진이 겪고 있는 이 감정의 굴레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회피-불안 애착’이다.
거절당할까 두려워서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관계 안에 머물고 싶어하는 상태.
그녀는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늘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게 오히려 관계를 더 얕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왜일까.
그녀는 알고 있다.
그 안에 ‘진짜 사랑’은 많지 않다는 걸.
상대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앱을 지우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무도 내게 말을 안 걸잖아.
그런데, 이 앱에선 누군가가 내게 말해줘.
그게… 그냥, 버틸 수 있는 힘이 돼.”
“잘 지냈어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저녁은 드셨어요?”
이런 메시지가
가끔은 구원 같고,
가끔은 더 큰 허기를 만든다.
그 대화는 이어지지만,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외로움을 막는 얇은 커튼처럼.
혜진은 여전히 데이팅앱을 켜고,
누군가의 메시지를 기다린다.
그것이 그녀의 삶에 유일한
‘상호작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을 원하지만
확신은 두려워하고,
사랑을 원하지만
상처는 겪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앱은
마치, 외로움의 환풍기처럼
우리 마음에 바람을 넣는다.
하지만 그 바람은
늘 찬기운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