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퇴직공무원> 4.
한밤중에 카톡 메시지가 울렸다.
「어디 계세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아는 얼굴과 이름이었다. 함께 일 한 적은 없지만, 같은 조직에 몸담으면서 안면이 있는 사이. 고향이 나와 같고, 겉으로 보이는 성격은 유순하며, 상대방에게 예의 바르되, 사무적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적지 않게 주는 중년의 남자.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사이로 기억한다.
나는 잠시 상황을 파악해보려 했다. 문득 내 안부가 궁금해 카톡을 보낼 만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다짜고짜 '어디 계세요?'라니... 뭔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메시지를 읽었는데 그냥 모른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어라 답장을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잠시 후, 나는 메시지 창에 고심한 글자들을 하나씩 적어 넣었다.
「어!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 TMI(Too Much Information) : 얼마 후, 나는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어!" 외마디 비명으로, 한밤중 뜻밖의 카톡에 당황했음을 짧고 빠르게 표현한 뒤, "안녕하세요."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곧이어 "저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만...."라고 여운을 남겨 '무슨 일로 내게 연락했는지' 물음을 하려다, ".... 있습니다."로 끊어냈다. '이제 당신의 용건을 말하시오.'라는 무언의 배턴터치였다. 곧바로 두 개의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분을 찾다가 그만. (켁!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
그 순간, 뭐야, 나 왜 고민한 거야? 헛웃음이 나왔다. 직원 중에 나와 동명이인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 조직 내 전체 직원의 연락처를 휴대전화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굳이 친분이 없는, 심지어 전혀 모르는 직원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어, 나는 답장을 보냈다.
「(켁!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
「네. 덕분에 한 번 빵 터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건강하세요, 잘 지내세요, 끝인사를 뭐라 마무리 지을까 한참을 쓰고 지우다가 뜬금없이 '수고하세요.'로 마무리 했다. 마지막 답장이 카톡! 카톡! 카톡! 돌아왔다.
「(헐! 표정의 이모티콘)」
「넵!」
「수고하세요.」
한밤중의 해프닝이 끝났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디 계세요?」로 시작해서 「수고하세요.」로 끝난 싱거운 대화가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맴돌았다.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 들었다. 조금 전에 나눴던 카톡 메시지를 열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켜진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나를 고심하게 만들었던 한 줄의 메시지, 「어디 계세요?」. 문득 어떤 존재가 내 삶에 묻고 있는 질문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불속에 누운 채, 질문에 더듬더듬 답변을 달아보았다.
「어디 계세요?」
저는 지금, 사람들이 불혹의 나이라고 말하는 40세에 와 있습니다. 공자는 40세가 되니,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 하였다는데, 저는 여전히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숱한 것들에 미혹되고 현혹되고 있으니, 아직 불혹의 나이에 오지 못한 것도 같습니다. 아니면, 만으로 이제 40세가 되었으니 앞으로 1~2년은 더 지내봐야 불혹이 될까요? 그도 아니면, 10년 20년을 더 살다 보면 언젠가 진정한 불혹에 이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디 계세요?」
인생의 제2막 서두를 지나고 있습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제외하고, 내 의지로 삶을 살아내기 시작한 20대 이후의 삶을 크게 나눠보자면, 1막의 삶이 몇 해 전 막을 내렸습니다. 참 감사하고 분에 넘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2막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결론이 정해지지 않은 2막을 시작한 지금, 그래서 설레고 두렵습니다.
「어디 계세요?」
익숙한 것들과 조금씩 이별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청춘인 줄 알았던 제 젊음과 이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익숙한 장소와 물건들과도 이별합니다.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고집과 철없던 시절의 자만과도 이별하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도 어서 이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으로 허공에 눈만 껌뻑이며 누워 있는데, 잠시 후 어디선가 내게 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