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들만 들켰는지 모르는 그런 것
우리는 회사 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다니는 일개 사원 나부랭이었기에 내가 사내연애를 하든 비밀연애를 하든 다들 관심 없을 것이지만 일단은 초반에는 사내에서는 티 내지 말자고 우리는 다짐했다.
그냥 단순하게 혼자 생각으로 "아 쟤네 사귀는구나~" 이렇게만 알고 있으면 상관없는데, 나와 말 한번 안 섞어본 사람들이 내게 와서 사귀냐는 질문과 심심풀이로 꺼내 먹는 안주거리 마냥 우리 이야기를 꺼내서 즐기는 것이 싫었기에 굳이 티 내지 말자고 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출퇴근을 같이 했던 우리는 일부러 먼 길로 돌아서 다니곤 했는데, 그 와중에도 몇몇 직원들이 어디선가 보고서는 나와 친한 디자인 3인방에게 나와 C의 교제 사실 여부를 물었고 그들은 사실을 몰랐음에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일단 여기저기 아니라고 해뒀다며 알려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나는 3인방에게는 사실대로 사귄다고 이야기했으며 지금처럼만 대충 얼버무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회사에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 존재했는데, 초반에는 퇴근 후 종종 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며 친해지려 했으나 일하는 스타일이나 사람 됨됨이가 나와 맞지 않아 거리를 두게 된 사람이었다. 내가 거리를 두고 싶어 한 걸 알았는지 그 사람 또한 나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고 눈치가 빨랐기에 사무적인 이야기 외에는 사적인 농담도 안섞었었는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마주치니까 너무 재밌다는 눈빛으로 "C사원이랑 사귀세요?"라고 묻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싫었던 거다. 괜히 알면서 나를 떠보고 반응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대충 "아 요즘 좀 친해져서 같이 게임을 자주 하는데 많이 친해 보였나 보네요?"라고 말한 후 딱히 그녀의 답변은 듣고 싶지 않아 손만 씻은 후 자리를 떴다. 그 한 주 정도 동안은 그런 질문을 많이도 받은 것 같다. 심지어 절대 모를 것 같던 팀장님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며 말씀하시길래 어떻게 알게 되셨냐고 물으니 우리 회사 복지 중 하나는 한 달에 책을 몇 권 살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가 제출한 영수증의 서점 위치가 똑같아 은연중 알게 되었다고 말해주셨다. 정말 세상에 비밀은 없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주였고 이왕 들킨거 물어보든 안주거리 삼든 이젠 그냥 모든 게 귀찮아져 버려 숨기는걸 그만뒀다. 그렇게 그냥 편하게 출퇴근 같이하고 냅다 밥까지 같이 먹기로 하며 점심도 함께 먹기 시작했고 오히려 대놓고 같이 다니니 우리 행동이 다들 의심만 하고 있던 상황에 확답을 준 것이기 때문인지 더 이상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고 내 주변에게도 묻지 않게 되었다.
팀장님에게 있어 C, 나의 남자친구는 애착인형 같은 존재였기에 연애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나와 남자친구를 한 프로젝트로 자주 엮어주었고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았고 좋았다. 그러던 어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 각자의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 왔고 나는 디자이너 관점에서, 그는 기획자의 관점에서 대립하게 되었는데 사귀는 사이다 보니 서로를 배려한 중간의 결과물을 도출하기가 더욱이 쉬웠다.
타 사원이었다면 대화를 많이 안했다 보니 각자의 고집을 더 부렸을 수 있고, 오해도 그만큼 쌓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개개인 입장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어쩌면 사내연애의 장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졌을 때의 리스크는 나름 크지만 설사 우리가 끝이 안좋게 헤어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회사에서 엄청난 업적을 쌓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고 당장 나가도 미련 없었기에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어차피 들킬거라면 처음부터 대놓고 내 맘대로 다닐걸 생각했다.
매체나 주변에서 사내연애 절대 하지 말라는 소릴 너무 많이 들어 숨겼던 것도 없진 않은데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숨겼던 시간들이 쓸데없이 귀찮은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