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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배의 선택 : 성공의 저주

구영배 큐텐 대표는 왜 지마켓 신화를 재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걸까요?

by 라이프러리 Aug 15. 2024

지마켓은 2009년 4월 16일 이베이에 매각됐습니다. 구영배 대표도 지마켓 개인 지분 256만 주를 715억 원에 모두 이베이에 넘겼죠. 43세에 700억 원 대 자산가가 된 겁니다. 구영배 대표가 700억 원으로 맨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 4월 20억 원 정도를 들여서 90평 대 반포자이아파트를 매입했죠.


평범하다면 평범한 선택이었습니다. 강남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는 누구나 품고 있는 대박의 꿈이니까요. 2009년 연말 무렵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한 것도 그랬습니다. 싱가포르는 파이어족이 선호하는 도시 중 하나니까요.


이베이와 합작으로 팬아시아 커머스 큐텐을 창업하다.



그런데 1년 뒤 구영배 대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선택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구영배 대표는 2010년 4월 23일 지오시스라는 회사를 창업합니다. 지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지 딱 1년째 되는 시점이었죠. 그것도 지마켓을 인수해 간 이베이와 51대 49로 합작한 조인트벤처였죠. 다시 일을 벌이기 시작한 겁니다.


715억 원에서 반포아지아파트값 20억 원을 빼도 695억 원이 남습니다. 통장에 695억 원이 꽂혀있는데 1년도 채 놀지 않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구영배 지오시스 대표는 2010년 여름 이커머스 큐텐을 오픈합니다. 큐텐은 중국의 판매자들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의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팬아시아 오픈마켓이었습니다.


이름은 큐텐이지만 누가 봐도 아시아의 지마켓이었죠. 지마켓을 이베이에 냅다 팔아놓고 다시 이베이와 덥석 손잡더니 아시아의 지마켓을 후딱 시작한 것이죠. 이럴 거면 지마켓을 매각하지 말고 계속 키웠으면 됐을 텐데 말입니다.


구스닥 경매 모델을 버리고 지마켓 오픈마켓 모델로 피봇팅 하다.



사실 지마켓은 구영배 대표가 창업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1999년 인터파크의 이기형 회장이 창업한 구스닥이라는 사내벤처회사가 모태였죠. 구영배 대표는 1999년 구스닥의 팀장을 맡게 됩니다. 명함에는 대표라고 쓰고 사내에선 팀장이라고 읽혔죠. 2000년 인터파크로부터 독립해서 별도 법인이 됐지만 자본금 10억 원은 대부분 인터파크의 자금이었습니다.


지마켓은 2006년 6월 29일 나스닥 상장에 성공합니다. 이때 구영배 대표도 스톡옵션 200만 주를 모두 행사했죠. 그렇게 확보한 지분율이 5% 남짓이었습니다. 2009년 이베이에 지마켓을 팔지 말지의 결정권은 애당초 구영배 대표한테 없었다는 뜻입니다.


구영배 대표는 지마켓 신화의 주인공이었지만 지마켓 신화의 주인은 아니었으니까요. 어쩌면 구영배 대표가 자신이 온전히 주인인 제2의 지마켓 신화를 꿈꾼 것은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이었습니다.


구영배 대표가 큐텐을 설립하던 그 해 여름 구영배 대표가 떠난 한국 시장에선 이커머스의 신흥 강자가 등장합니다. 2010년 8월 10일 설립된 쿠팡이었죠. 쿠팡은 결국 선발주자 지마켓을 밀어내고 한국 온라인 상거래 시장을 석권하는 데 성공합니다.


정작 구영배 대표는 자신이 창업한 지마켓의 시대가 저물고 쿠팡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지마켓을 팔았으니까요. 이베이와 한국 10년 경업 금지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까요. 대가로 715억 원을 받았으니까요. 이미 선택했으니까요.


이효리 스타샵으로 패션 오픈 마켓을 장악하며 지마켓을 성공시키다.



“아마존도 이베이도 쿠팡도 모두 내가 만든 지마켓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024년 7월 30일 화요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구영배 대표가 한 말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지마켓을 매각한 2009년부터 큐텐 사태를 일으킨 2024년까지 구영배 대표가 사로잡힌 일념이 무엇이었는지가 전부 담겨 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구영배 대표는 자신이 만들었고 팔았던 지마켓을 스스로 다시 만들기 위해 살아온 겁니다. 아시아라는 더 큰 무대에서 말이죠. 구영배 대표는 자신이라면 지마켓 2.0을 무조건 다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아무리 성공의 당사자여도 재현할 수 없는 성공이 있습니다. 행운이라는 변수 때문이죠. 지마켓의 성공은 인터넷 상거래의 초창기였던 2005년 전후였기 때문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당일 배송이 당연하죠. 당시엔 일주일 뒤에 받아도 신기해만 했죠. 당시엔 지금처럼 판매자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플랫폼이 적자 할인을 감수해야 하지도 않았죠. 지마켓의 경쟁자는 사실상 이베이의 옥션뿐이었으니까요.


지마켓 시절 구영배 대표는 소비자의 쇼핑 편의를 높여주는 아이디어를 매일 같이 쏟아내는 경영자로 유명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서비스를 조금만 편리하게 바꿔줘도 소비자들이 환호하는 순진한 시절이었단 얘기죠.


지금 이커머스의 경쟁 포인트는 무조건 가격입니다. 편리함은 당연한 것이죠. 정작 구영배 대표는 자신이 누렸던 행운을 간과했습니다. 어떤 면에선 지마켓 2.0에서도 또다시 행운이 따라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죠.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을 지렛대로 티몬을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인수하다.



자신의 성공은 온전히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여기면 오만해집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죠. 스스로 세상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고 여깁니다. 특히 경쟁사나 후발 주자들한텐 내심 우월감을 갖죠. 구영배 대표는 쿠팡 창업주 김범석 의장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 없어서 김범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영배 대표는 2022년 9월 티몬을 시작으로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를 연쇄 인수합니다. 모두가 쿠팡한테 밀려서 적자의 늪에 빠진 이커머스들이었죠. 티몬은 2017년 창업자 신현성 대표가 떠난 뒤 5년 동안 최고경영자만 5번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주식 맞교환 방식이었다는 해도 6000억 원이 넘는 적자 회사를 덜컥 인수하는 것은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는 짓이었죠. 구영배 대표 스스로 무려 6명의 티몬 CEO들이 못한 일을 자신은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입니다. 엄청난 자기 확신이었죠.


지오시스 재무팀과 개발팀을 통해 이커머스 계열사의 판매 정상금을 관리할 수 있는 중앙통제시스템을 만들다.



티메파크의 판매자 미정산 사태로 구영배 대표의 자기 확신이 사실은 고객 기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구영배 대표가 2010년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지오시스는 결제 시스템 개발 회사로 알려졌지만 본질은 따로 있었습니다. 정산 주기가 제각각인 판매자 정산금들을 칵테일 해서 유동 자금으로 만드는 금융 공학 회사였죠. 처음부터 아예 정산 대금으로 프로모션 적자를 돌려 막는 자금 구조를 만든 겁니다.


판매 정산금은 길든 짧든 반드시 판매자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판매자들의 돈입니다. 구영배 대표는 판매 정산금을 플랫폼의 돈처럼 유용했죠. 판매자들을 내려다봤기 때문에 가능한 짓이었습니다.


구영배 대표는 2012년 물류 회사 큐익스프레스를 창업했습니다. 큐익스프레스 역시 지오시스처럼 판매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큐텐 계열 이커머스에 입점하면 무조건 큐익스프레스를 써야만 하죠. 티메파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를 합병하고 판매자의 미정산 대금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K커머스 구상을 사태 해결책으로 내놓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영배 대표는 큐텐 사태의 해결책으로 KCCW 설립 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KCCW는 전 세계를 위한 코리아 커머스 센터라는 거창한 뜻입니다. 티메파크를 아예 한 회사로 합병하고 판매자 미정산 대금을 주식으로 전환하자는 얘기죠.


개별 회사인 티메파크의 정산 대금을 큐텐 한 회사의 자금처럼 통합관리해서 이 사달이 났는데 아예 회사를 하나로 만들자는 얘기죠. 게다가 어차피 티메파크에 돈이 물린 판매자들한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능한 구상입니다. 물에 빠뜨려놓고 지푸라기를 내미는 겁니다.


아시아의 지마켓부터 KCCW까지 구영배 대표는 초지일관합니다. 주어진 환경과 처한 현실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해법을 밀어붙이고 있죠. 투자자도 판매자도 소비자도 구영배 대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환경입니다. 판매자 정산 대금을 주식으로 교환하자는 것은 구영배 대표가 원하는 것이지 판매자한테 필요한 구제책이 아니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구영배 대표는 지오시스의 돌려 막기 시스템으로 버티고 버티면서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으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아수라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지마켓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지마켓 신화에 자신이 도취돼 있는 것입니다. 성공의 저주입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의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를 기다리다. 



우리는 인생에서 성공을 꿈꿉니다. 성공은 노력과 행운의 고차방정식이죠. 그런데 구영배 대표를 보면 성공의 저주가 떠오릅니다. 한번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에 도취돼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저주죠.


그런 인생은 평생 과거의 나와 싸우면서 살게 됩니다. 700억 원이 통장에 꽂혀도 행복할 수 없는 인생이 돼버리는 것이죠. 게다가 자수성가로 이룬 큰 성공은 세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게 만듭니다. 사람을 성공을 위한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죠. 우리는 성공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성공은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구영배 대표의 인생을 읽다 보면, 성공 이후엔 우리에겐 인생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 인생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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