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가원은 스튜디오같이 공간이 널찍하다. 그래서 자기 원하는 자리 어디든 매트를 깔고 수련하면 된다.
나는 늘 매트를 제일 앞에 깐다. 다른 사람이 시야에 안 들어오는 자리다. 오직 선생님의 동작만 보이고, 선생님의 지시만 들리는 자리.
그러다 지시를 잘못 알아들어서 혼자 다른 방향으로 동작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맨 앞자리에서 틀리면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매트를 맨 앞 줄에 깐다.
내가 맨 앞 줄을 고수하는 이유는 요가를 잘해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아침 9시 클래스는 고인 물들이 주로 오는 시간대다. 아마 그 시간대에 오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동작을 못 할 것이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몸통 회전이 잘 안 되고, 허벅지 근육이 짧아 골반 미는 동작을 할 땐 진땀을 흘리면서 거의 울고 있다. 후굴이 거의 안 되는 사람이다.
언제나 나를 울게 만드는 우스트라 아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앞자리에 매트를 까는 이유는 요가할 때 어떤 마음도 갖고 싶지 않아서다.
남들이 잘 안 되는 동작을 운 좋게도 내가 잘할 때 드는 좀스러운 우월감, 남들 다 되는 동작이 혼자 안 될 때 드는 옹졸한 열등감들이 다 너무너무 싫다. 수련만도 힘든데 그런 마음까지 묵직하게 매달고 있으면 몸이 두 배로 지친다.
처음 요가원에 갔을 때 눈치 본다고 맨 뒤에 매트를 깔고 수련했는데 자꾸 다른 회원들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겐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점수 매기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보일 때마다 그 버릇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수련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요가에서 선생님이 가장 강조하시는 부분은 다른 사람과 내 몸이 다르다는 거였다. 개인마다 별 노력 없이 잘 되는 동작이 있고, 죽었다 깨나도 잘 안 되는 동작이 있으니 본인 몸에 맞춰 수련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다른 사람 몸과 나를 비교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동으로 그렇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 바꾸는 걸 포기했다. 대신, 요가 매트를 맨 앞자리에 깔았다. 못된 마음 고쳐 먹는 것보다 시야를 차단하는 게 더 쉬우니까. 아무도 안 보면 된다. 그러면 왜 나는 안 될까 왜 남들처럼 못할까 자책 시스템을 안 돌려도 된다.
오늘도 일찍이 와서 맨 앞자리에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오로지 선생님만 보면서 열심히 우스트라아사나를 시도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다 풉 웃으신 걸 보면 아마 무진장 애는 쓰는 거 같은데 동작이 잘 안나와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 눈엔 내가 안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