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데미안’을 읽고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경로를 이탈했다는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들린다. 좋은 세상이다. 길 하나 잘못 들면 조그만 기계가 알아서 다른 길을 알려주니까.
으레 그렇듯 누구나 한 번쯤은 미래의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본다. 스무 살에 떠올렸던 나의 20대 후반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사람, 나름 안정적인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계절을 놓칠세라 겨우 따라가다 보니, 떠올렸던 미래는 어느덧 오늘이 되어 지난날 꿨던 꿈을 삼켜버렸다. 하필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현재의 나를 바라본다. 일도, 사랑도, 금전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는 도태된 자가 길에서 서성인다. 찬란할 거라 굳게 믿었던 미래는 그저 허황된 꿈이었고, 이게 현실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길 바라며 스무날의 청춘을 보냈다. 삶의 목적지를 이정표로 나타낸다면 나는 몇 킬로미터쯤 와 있는 걸까. 저 멀리, 정처 없이 떠도는 길 잃은 발자국이 보인다. 무른 흙에 남겨진 흔적은 채 굳기도 전에 사라지고 조급함만이 아득한 날들 사이 위태롭게 걸쳐 있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정신과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간극은 언제쯤 좁혀질까.
무수한 새벽, 신에게 길을 묻는다.
돌아오는 말은 없다.
아마 신도 모를 테지.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언젠가 읽었던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펼쳤다. 공허한 마음을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때 문장 하나가 내 동공에 들어와 박혔다.
‘자신의 운명은 찾아내는 것이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 솟구쳤고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처럼 무언의 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멈춰 있게 한 문장.
고민으로 허덕일 때, 책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아니지, 내가 운명 같은 책을 향해 걸어간 것인가.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나의 어릴 적을 떠올려 본다.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갔던가. 지도를 펼쳐 어림짐작으로 한 곳 한 곳 짚어보고, 도로 표지판에 의지하며, 왔던 길을 빙빙 돌기도 하고, 막다른 길에 도달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마을 주민에게 묻고 물어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느낀 일말의 성취와 해방.
그동안 나는 무얼 듣고 무얼 얻고자 했을까. 삶에서 내가 입력한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나만 알 수 있다. 아무리 굽이지고, 비탈지고, 험한 길일지라도 짐작해 보고, 넘어져보고, 빙빙 돌아보고, 막다른 길이라면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그렇게 다시 나아가면 된다.
어차피 모든 길은 정답 없는 후회뿐일 테니까. 정답 없는 후회가 좌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스스로 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잡스(Jobs)-에디터(Editor) 中
이제 나는 운명을, 그리고 운을 스스로 만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