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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7. 2024

새로운 도구, 새로운 나


오히려 좋아

  음악을 그만두면서 조금씩 ‘나답게’ 살기 시작했다. 마치 평생 음악이라는 매개가 ’나다움의 기회’를 방해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와의 물리적, 감정적 단절도 어머니와의 관계회복도 그것을 도왔다.


 늘 음악적 성취를 쫓느라 미루기만 했던 모든 일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몇달 후에 죽을 사람처럼 버킷리스트를 지워간다. 여행을 떠나고, 수영과 테니스를 배우고, 핸드 드로잉 수업을 들었다. 요리를 하고, 집을 꾸미고, 브이로그를 찍어 올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들 속에서 이제껏 부정하던 나의 모습을 하나씩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들은 내가 평생 부모의 그림자안에서 살아왔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내가 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기 위해 살았음을. 내가 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되지 않기 위해 살았음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새로운 길을 향해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무언가 증명해내려고 안달복달하지 않고, 그냥 즐긴다. 내 안의 가치와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며 즐겁게 해나가는 법을 이제서야 조금씩 배운다. 가치를 증명 하지 않으면 버림 받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깨나간다.


 새로운 도구들을 통해 나는 몇년 전 버려두고 왔던 내면아이를 다시 만났다. 요리조리 초자아를 피할 필요도 없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모험도 전투도 없이 안전하고 고요하게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심연에서 구조한 야생의 '나'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가짜 나'는 종종 침투한다. 더 완벽하게 쓰라고, 더 대단하게 그리라고 종종 무언가 내게 속삭이지만 음악처럼 전문적인 도구가 아닌지라 그러기가 힘들다. 아이고, 제가 그럴 능력이 없어서.허허허. 오히려 좋다.





진짜 나

지금 나는 미사여구로 가득한 장황한 글을 쓰고 있고, 고독하고 어도러블한 오리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 주로 글을 쓸 땐 울고, 그림을 그릴 땐 낄낄댄다. 스토리 텔링을 하고 세계관을 창조하는 일이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퇴사를 한 후 여러가지 일에 도전하고 있다.


 가끔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쉽게 건반 앞에 앉지는 못한다. 또 다시 ‘가짜 나’에게 자리를 내어줄까 두렵기 때문이다. 음악만큼 나의 전문성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도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그 도구를 집어 드는 순간, 나는 다시금 성취욕에 매몰되어 겨우 만나 길들이기 시작한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제서야 음악을 '듣는 행위'를 다시금 즐기게 되었다.

 이제 100% 나의 마음에만 충실한 플레이리스트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레슨을 위해 듣기 싫은 음악을 들을 필요도, 성취를 위해 대중이 원할만한 선곡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경험 탓인지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가사 없는 연주곡을 듣고 있다. 드븨시, 류이치 사카모토, 쳇베이커와 빌에반스, 종종 텐션이 오르면 시규어로스와 시가렛애프터섹스를 들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냥 이대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도 꽤 좋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내 인생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불행하게 곡을 쓰고 노래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그것이 더 행복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든다. 나의 음악인생이 이대로 끝날지 또 다시 이어질지는 아직 나도 모른다. 음악이 나를 억압하는 도구가 아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음악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있다. 올해 초에는 그 미련이 다시 음악을 해도 된다는 신호라고 여겨 오래 전 써 두었던 곡을 마무리해서 발매까지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곡을 발매하자마자 나는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목디스크가 터진 것이다. 앨범을 발매 하고 나면 늘 아팠었다. 앨범을 준비하며 무리한 탓도 있고, 발매 후 반응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어디 한 곳은 꼭 고장이 나서 고생을 했었다. 물론 이번 목디스크 사건은 안 좋은 자세로 오래 그림을 그려서일 확률이 높지만, 4년만에 음악을 발표하자마자 입원을 하게 되니 '아이코 이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도구 자체가 아닌 것 같다. 평생 안고 산 내면의 완벽주의나 인정욕구는 음악외의 모든 분야에도 당연히 작용할 것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반응에 집착하고 타인의 가치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무엇을 하든 또 다시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이 글을 쓰고 있다. 퇴고를 거듭할 수록 수식어와 글자수가 늘어나는 전혀 미니멀하지 못한 글을. 이 회고록이 글쓰는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어줄지, 그냥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계기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글을 쓰게 될지, 그림을 그리게 될지, 다시 마이크 앞으로 돌아갈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떤 도구를 쓰던, 중요한 것은 '진짜 내가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나 자신에게 되새기기 위해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고 있다.


 평생 부모의 그림자 속에 갇혀 진짜 내가 되지 못했다.

 심연에서 진짜 나를 처음 마주했을때 두려움에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 있고, 어머니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진짜 나를 마주하고 있다.



그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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