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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06. 2024

건축학도 2.

4. 좀 지루한 날이다.




"혜진씨 일찍 나왔네?"

"아..네.. 오셨어요?"

당연히 일찍 와야 한다. 이 회사 경리로 일 하고 있는 혜진은 아침에 먼저 와서 잠시 사무실을 정리해둔다. 9시 출근이기 때문에 대략 15분 전에만 도착해도 작은 사무실 안을 잠시 정돈하고 컴퓨터를 켜면 시간이 금방 간다.


혜진의 자리는 문 바로 앞에 위치한다. 그래서 오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혜진이 모두 맞이한다. 30평 남짓한 이 사무실은  관리직원의 큰 공간과 영업사원들 자리, 그리고 사장의 공간이 널찍하게 있다. 서류를 모아두는 계약서류보관함 공간과 작은 탕비실을 포함하면 금방 다 찬다.

그래도 좋은 점은 다 트여있는게 아니어서 파티션 안쪽에 앉아 오전에 얼른 업무를 보고 나서 오후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공부를 조금씩 하기도 했고, 조금 지루하긴 해도 2년간 이 회사에서 이직하지 않고 일을 한 이유이기도 했다.

 컴퓨터 관련 업무를 하는 이 회사는 기존에 대기업에 다녔던 사람들이 나와서 차린 회사였다. 그래서 영업으로 다양한 컴퓨터 관련 유지보수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2년간 일 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모른다.

대부분 관공서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유지보수 해주는 일인데, 이 사무실에는 영업을 나가는 영업직 직원들이 모여 있고, 대기업 내의 컴퓨터 as를 전담하는 기술직 직원들은 모두 대기업 내의 사무실에서 상주한다.

영업직직원 4명에 관리직원 나 하나, 그리고 기술직직원 7명 정도 와 타 지역에 상주하는 기술직원 2명을 포함하면 대략 10-15명 정도가 포함되어 인원수가 조정되곤 했다.


20살 초반의 혜진에게는 그냥 마냥 다들 아저씨들의 모임처럼 보였다. 회식이 있는 날에는 먼저 들어가라며  보내주는게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어려보였었구나' 라는 걸 느낀다.

배가 나온 모습도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고, 혜진아 혜진아 부르던 사장님의 목소리도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매일 똑같이 아침에 와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전표를 작성하고, 계약서 철을 한 후에 다시 꽂아두고 정리를 하는 일상.

탕비실에 과자나  커피가  떨어지면, 비품들을 사러 간다는 요량으로 혜진은 한번씩 나와서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 맞다. 그리고 사장님의 차를 세차 하기 위해서 세차장에 가서 결제를 하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비는 시간동안에 심심하면 인터넷 서핑도 하고, 비품들도 사러 다녔다. 물론 일은 너무나 편했고, 하는 일 대비 보수도 나쁘진 않았다.

첫해에는 일을 해서 돈번다는 즐거움에, 두번째에는 그냥 그래도 맘이 편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타협하며 살아갔지만, 슬금슬금 언제부터 였는지 너무 지루한 시간에 혜진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 아..공부 좀 다시 해볼까?'












오늘도 똑같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했고, 사무실과 탕비실을 정리했으며, 한명 한명 문 열고 들어오는 문에 대고 나는 "안녕하세요."를 연신 말했다.

오전에 이렇게 저렇게 상무님이 보는 신문 이야기를 듣고, 12시가 땡 하면 인근에 있는 매달 정액을 결제하고 먹는 밥집에 가서 사장님이 주시는 매일 바뀌는 백반으로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 사람들과 믹스커피를 마신다.

순조롭고 조용한 일상은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특별한 것도 없다. 살다보면 어찌 매일 액티브 하겠냐만은 가끔은 조금 뭔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열정을 갖고 살아있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기도 하다. 기계처럼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머리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어릴때부터 해보고 싶던. 건축. 그래..그냥 한번 해보지 뭐.  아니면 말고!






5. 니가 무슨 공부야?



"엄마.  나 대학교 가려고."

한숟가락 먹으며 엄마한테 얘기해봤다. 당연히 싫어하겠지? 우리집은 잘 살지도 않고 그날그날 벌어 먹고 살지만 그렇다고 못살진 않는다. 그래도 뭔가 여유는 없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내가 공부를 하길 바라기보다는 돈벌기를 원하는 분이다.

언니도 공부는 잘했지만 서울이라는 곳에서 공부하며 학비며 방값이며 생활비며, 이런걸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대 장학금을 받는 학교를 선택했다.

물론 미래는 모를 일이지만. 참 어릴때부터 알았다. 돈이 참 중요하다는것을..꿈 보다는.

그래도 뭔가 돈을 벌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나에게는 그저그렇게 살아가게 두지 않았나보다. 나의 도전정신 이기보다 이기적인가? 라는 생각을 하는건 아마도 내게 죄책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슨 갑자기 대학이야? 그냥 일이나 잘 다녀. 학교가면 대학등록금이나 생활비는 어떻게 하려고?"

"그냥 벌어 둔 걸로 우선하고 또 아르바이트 하면 돼. 그리고 시험친다고 다 되는것도 아니야. 그냥 한번 쳐보고 되면 가고 안되면 일 할 거야."

엄마는 보는체 마는체 그냥 그렇게 바닥을 물티슈로 닦으며 어차피 안될거 포기하듯 해보라며 "그래,그래" 라고 대추 둘러댔다.

나 역시 똑같은 마음이다. 되면 해보고 아니면 아닌거지 뭐. 운이 없나봐 하고 그냥 지나칠 일이다. 그렇게 시작한 준비로 2004년의 겨울은 나에게 참 바쁜 해였다. 난생 처음 가보는 경기도와 서울.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곳에 덩그러니 온 듯 한 그 느낌이 나를 이곳에 이끌어주었다.


"ㅇㅇ대학교. ㅇㅇ대학교, ㅇㅇ대학교, ㅇㅇ대학교, ㅇㅇ대학교."

풉!  그래도 목표는 높게 잡아야지. 대학시절에 이렇게 나름 얘기하면 아는 학교 지원하는 사람들보면 참부러웠다. 어딜가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모교가 있음이 너무 좋지않은가?


참 먹고 살기 빠듯하다. 누구는 금수저집에 태어나 날 때부터 명품입고 매일 과외 붙여주며 그리도 편하게 공부하고 놀더니 나는 노는것도 아니고 내 오랫동안 꿈 꿔온 꿈 하나 이뤄보려해도 이리 돈이라는 자본의 족쇄에서 풀려나질 못한다. 세상 뭐이리 불공평하냐 백날 얘기해도 결국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메아리지.

이제는 이골이 났다, 그래서 그냥 해보기로 했다. 아니면 말고. 안하는것보다 해보는게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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