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이 말하는 동물병원에 처음 방문한 날
어두운 새벽의 한가운데에서 눈뜬다. 내가 눈을 뜨면 언제나 리브가 곁에서 나를 반겨준다. 최근 들어서는 활동양이 예전만 못한 거 같지만, 그래도 마룻바닥에 들러붙어서 꼬리만큼은 열심히 반겨준다. 그렇게 도끼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는 리브를 보면 마치 처음 사랑받아본 사람처럼 아직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리브 잘 잤어? 너 귀가 조금 불편하나? 새로운 수의사 선생님이 너 귀가 조금 안 좋대.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너 관리해 주던 선생님께 이것저것 더 요청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해야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못 하잖아. 내가 이렇게 수다쟁이인걸 세상사람들은 영원히 모르겠지? 어때 넌 내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 같아?” 리브는 바닥에 앉아있던 내 무릎 위에 턱을 올리고 다시 나를 올려다본다. 마치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나를 위로하고 있는 거 같다. 난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오늘 산책하고 빗질하자. 오늘 동물병원 가서 진찰받는 날이야. 너도 좋지?” 산책이란 말에 리브는 벌써 상황을 파악하고 현관으로 나를 안내한다. 난 익숙하게 리브를 데리고 새벽 산책을 나선다.
새벽의 공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지 못한다. 여기에 산자라고는 나밖에 없다. 나 이외에는 모두 죽은 자뿐이다. 비교적 외진 위치의 공원은 내가 선택한 최적의 산책장소이다. 음산하게 피어나는 분위기는 산사람은 누구라도 거부하는 듯 새벽이슬에 여기저기 젖어있었다. 우리는 매일 이 짧은 산책로를 걷는다. 사실 리브에게는 좋지 못하다. 리브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궁금해한다. 여기저기 새로운 장소에 가면 냄새를 맡아가며 두 눈을 반짝인다. 단지 나와 함께하기 위해서 이 어두운 길을 걷는 것이다. 한때는 도우미분을 고용해서 리브의 산책을 맡길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난 이기적인 마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리브가 나보다 다른 누군가를 따르게 된다면, 그때는 난 진짜 버텨낼 힘이 없을 거 같아서였다. 그렇게 이기적인 나를 매일 마주하며 단 한순간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아 또 망상에 빠져버렸네.” 나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하고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사실 이 시간에 여기에 오는 사람은 아마 죽은 자이거나 죽고자 하는 자뿐일 것이다. 그런데 소희 씨는 왜 이 시간에 공원에 있었던 거지?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이런 어둠을 밝혀주려고 강림한 건가? 나도 모르게 떠오른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생각들에 진저리를 치며 산책을 마무리했다.
나는 오랜만에 외출에 조금씩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사실 인터넷만 되면 뭐든 집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필요하면 자산을 관리해 주시는 변호사님이 집에 방문해 주신다. 할머니가 각별히 아끼던 아들 같은 분이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주기적으로 집에 들러서 내 상태도 봐주시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도 처리해 주신다. 아 그리고 운동선생님도 있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고 싶어 하셨고, 나의 요구에 따라서 선천적으로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분이 운동선생님이 되셨다.
"리브야 어쨌든 이거다 너를 위한 거야. 알았지?" 잠시 리브를 쓰다듬어주고는 어색하게 외출준비를 한다. 이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게 얼마만일까? 평소에는 집안에서만 머물며 무슨 병이라도 걸린 듯 집을 청소한다. 집은 할머니가 계시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새로 들어온 것도 없고 나 몰래 사라진 것도 없다. 모든 물건은 그대로이다. 없어진 것은 사람뿐이다. 마당과 정원은 보통 주말에 관리를 한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소나무의 가지를 쳐주기도 하고, 마당을 청소한다. 정원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다 보면 이따금 담장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나의 우주는 이 집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들은 아니겠지? 비행기를 타고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비행기는커녕 트라우마로 자동차도 타지 못한다.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발작이 일어나서 바로 포기해야 했다. 난 하루 안에 걸어서 갔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올 수 있는 곳에만 갈 수 있다. 그게 내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감옥에서 산다.
다행히 소희 씨 병원은 내가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입에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선다. 리브는 이 어색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고장 난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지만, 정작 골목을 걷기 시작하자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난 리브의 눈을 보면 안다. 리브는 지금 나를 걱정하면서도 매우 행복한 상태이다. 어릴 때는 이 정도로 밖을 안 나가지는 않았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난 더 사람들을 피했다. 그러나 막상 오후의 따듯한 햇빛을 받으며 거리를 걸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쩌면 나를 그 감옥에 가둔 것은 나 자신일까? 내가 만든 이 감옥을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가서 접수 데스크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저희 병원은 처음이세요?” 난 익숙하게 핸드폰에 메모장을 켜서 메모를 작성했다. [제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메모로 말씀드려요. 오늘 처음 방문입니다. 필요한 서류 주시면 작성하겠습니다.] 내 핸드폰의 메모를 읽던 간호사분은 당황한 듯 서류를 내밀었다. 난 서류를 작성하고 잠시 대기한 후 진찰실로 안내받았다.
진찰실에 들어서자 소희 씨가 앉아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소희 씨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겨울의 눈보다 하얗고, 그 어떤 새벽의 별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밝게 빛나면 빛날수록 나는 더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가는 걸 느꼈다. 소희 씨는 나를 보더니 이야기를 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제가 좀 더 자세히 진찰을 해보려고 해요.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은데 괜찮으시죠?"
난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숨이 막혀가는 거 같았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희 씨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그것이면 충분한 거 아닐까? 마치 내가 소희 씨와 특별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행복해하던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었다. 난 행복해하고 있었다. 행복하게 일어나, 행복하게 밥 먹고, 행복하게 오늘 이 길을 걸어서 여기에 와있다. 난 행복했다. 그게 너무 오래간만에 느끼는 것이어서 난 그 행복에 취해있었다. 난 점차 정신이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고개를 들었을 때, 난 소희 씨 눈을 보았다. 그 동정하는 눈빛에서 내 자존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내 답을 기다리던 소희 씨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조금 안색이 안 좋아 보이세요. 저희 고객 대기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조금 쉬시면 검사 끝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검사결과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 나오는 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는 그냥 말하고 싶지가 않다. 검사가 끝난 리브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난 그렇게 며칠을 앓아누웠다. 난 바보 같았다.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가장 보여주기 싫은 상대에게, 그것도 너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자책감에 나는 무너졌고, 그렇게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역시나 나를 살려주는 건 리브다. 리브가 며칠째 산책을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서 새벽산책에 나섰다. 그렇게 새벽 산책을 하고 난 후에야 나의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새벽길을 걸으며 난 핸드폰에 전원을 켰다. 사실 배터리가 없어서 자동으로 꺼질 때까지 난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충전된 핸드폰에 전원을 켜자 밝은 빛을 내며 나를 반기듯 알람이 울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문자가 몇 통 와있었다. '어?' 난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내가 며칠 만에 핸드폰을 본다고 연락 따위가 와있을 리가 없다. 너무 당황해서 핸드폰을 한참이나 노려봤다. 무려 3통이나 문자가 와있었다.
[저번에 봤을 때에는 귀 쪽이 안 좋아 보였는데 자세히 검사해 보니 큰 문제는 없었어요. 생각보다 관리가 잘된 거 같아요. 각종 검사도 크게 이상 없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노견이다 보니 먹는 사료를 조금 신경 써야 할거 같은데 혹시 어떤 사료를 급여하시나요?]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병원에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까요? 하루동안 답장이 없으셔서요. 저희가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참고하고 싶습니다.]
[저기 이런 식으로 무시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틀이나 연락이 없으시넹ㅛ]
난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희 씨에게 연락이 올 거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마음은 급해졌고 내 사고는 정지되었다. 난 행복하면 안 된다. 그냥 소희 씨가 살아있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소희 씨도 다른 수의사 선생님이 하시던 대로 한 달에 한번 집에 방문을 해서 리브를 봐주시면 된다. 난 더 이상 집 밖에 나갈 자신이 없어졌으니까. 나는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답장을 했다.
[바로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지금 확인을 했어요. 제가 아직 밖에 나서는 게 쉽지가 않아서요. 혹시 저희 집에서 리브를 진찰해 주실 수 있나요? 그전에 리브를 봐주시던 수의사 선생님을 위해서 꾸며놓은 방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말고 저희 집으로 들어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조건은 전부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문자를 보내고 얼마나 지났을까? 답장이 왔다. 정말 답장이 왔다.
[네. 들어갈게요.]
음? 들어온다니. 왕진을 해주신다는 말이겠지? 바쁘실 텐데 너무 자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방문해서 리브를 봐주시면 된다. 그래. 이전에 선생님처럼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왕진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대문 앞에 서있는 소희 씨를 마주했다. 맞다. 소희 씨는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들어왔다. 내 맘에도. 내 집에도.
[ 09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