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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Aug 08.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09화)


세이렌이 기억하는 동거 첫날의 이야기



지훈 씨는 며칠 전에 다애를 데리고 병원에 방문해 주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다. 그런 그가 계속 신경이 다. 도대체 내 마음은 무엇일까? 왜 이렇게 그 사람이 날까? 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그때쯤이어서 내 슬펐던 기억이 그와 얽혀있는 것일까? 내가 다애를 버리려고 했던 일이 죄책감이 되어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일까?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은 눈을 한 그를 외면할 수 없?  처음 느껴본 지금 내 감정의 이름을 알고 싶다. 난 내 맘을 더 알아 필요가 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에게서 칠째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바로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지금 확인을 했어요. 제가 아직 밖에 나서는 게 쉽지가 않아서요. 혹시 저희 집에서 리브를 진찰해 주실 수 있나요? 그전에 리브를 봐주시던 수의사 선생님을 위해서 꾸며놓은 방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말고 저희 집으로 들어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조건은 전부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난 문자를 보고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역시나 이것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마치 내 안에 숨겨진 보물 찾기를 하듯 그렇게 그는 나를 자극시킨다. 지금 이 문자의 뜻이 나보고 자기 집으로 들어와 살라는 말이야?” 아무리 읽어보아도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다짜고짜 동거를 하자는 말이었다. 정말 앞뒤가 없다. 아니면 나를 집에 상주시키는 전속 수의사쯤으로 여기나? "아..." 잘 읽어보니 다른 수의사도 그렇게 주하며 관리를 해주었나 보다. 난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다른 분도 그렇게 해주셨다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이 제안을 바로 거절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오로지 다애 때문이다. 맞다. 핑계가 아니다. 지금 다애의 나이로 봤을 때도 이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만약 내가 저 집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쩌면 나는 다애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난 그 마지막을 미친 듯이 지키고 싶다. 난 항상 내가 사랑하는 것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다고 느낀다. 이것은 내 가장 큰 집착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생활 내내 일같이 내 방 창문에 기대어 새벽을 산책하는 와 다애를 지켜봐 왔다. 이제 나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래. 난 세상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가 아니다. 난 원하는 게 없었을 뿐이다. 이제 가지고 싶은 게 생긴 이상 그냥 가져야겠다. 난 결정을 하고 답장을 했다.


[네. 들어갈게요.]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다. 난 간단하게 며칠 입을 옷과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을 챙겼다. 그렇게 그날 밤을 새웠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나는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의 마음이 된 거 같았다. 새 잠들지 못하는 어둠으로 여전한 시간이 지나고 샛별이 뜨자,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나타났. 내일은 여기가 아닌 저기 들과 함께하겠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마치 몇 달간 떠나는 해외여행이 이런 기분일까? 난 지훈 씨 집 앞에 섰을 때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집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은 들어가 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상인 거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아버지 집과는 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아버지 집은 고 비싸 보이기 위한 집이었다면, 그의 집은 애써 그 존재를 감추려는 듯 보였다.


대문의 인터폰을 누르고 얼마 후 지훈 씨가 꾸물거리나왔다. 날 보며 놀라는 눈을 기억한다. ‘본인이 오라고 해놓고 왜 이렇게 놀라지? 너무 아침에 왔나?’ 긴 언제 들어간다는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구나. 조금 쑥스러운 마음이 들자 애써 모른 척 지훈 씨를 지나서 집안으로 향했다. 집은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넓어 보였다. 뭐랄까 오래된 고택 같았다. 집으로 이어지는 돌계단마저 기품 있어 보인다. 한참을 대문 앞에 서있 지훈 씨를 뒤로하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다애가 나를 반긴다.


“이제 매일 볼 수 있겠다. 그렇지?” 다애를 마음껏 만지고 있는 중에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든다. 얼굴이 벌개 가지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지훈 씨가 보인다. 난 애써 못 본 척 말을 건넸다. “제방은 어디죠? 예전 선생님이 쓰시던 방 있으시다면서요.”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다애가 먼저 나를 이끈다. 집안은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거 같았다. 오래된 가구들이 꽤나 고급스러워 보인다. 다애가 이끄는 방문을 열자 지훈 씨가 허겁지겁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이끈다. '이 방이 아닌가?' 잠시 열린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안은 자개로 만든 가구와 여러 미술도구들이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여기는 누구 방이에요?” 당황스러워하는 지훈 씨는 핸드폰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할머니가 쓰시던 방이에요. 지금은 안 계세요.]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방은 채광이 참 좋구나. 정겨운 향기가 나.' 다시 다애를 따라서 다음방으로 움직였고, 지훈 씨는 못 볼걸 감추려는 듯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마치 빵빵한 풍선 같았다. 한쪽을 움켜쥐면 다른 쪽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내 마음을 건드렸다. '너무 꽉 쥐면 터질까?' 난 잠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고 다음 방문을 열다. 아마 이방은 손님용 방인 거 같았다. 호텔 같은 새하얀 침구와 최소한의 가구만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개별적으로 딸려있는 화장실도 보였다. 저 그냥 이 방으로 할게요. 괜찮죠? 조건은 다 맞춰주신다 했으니 제 요구사항은 곧 정리해서 말해줄게요.” 그는 마치 얼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아주 천천히 가로저었다. 정말 아주 천천히. 난 다시 지훈 씨를 지나쳐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섰다. 그러자 나를 따라오던 지훈 씨는 아주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어? 고개를 젓는 속도가 다르네?' 몸짓에도 감정이 있구나. 울 거 같은 그의 표정에 나는 시혜를 베풀듯 이야기했다. “이층은 안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뜻이죠?” 지훈 씨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다. ‘다애를 닮았다.’ 난 잠시 그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집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거실바닥에 앉아 다애와 놀아주었다.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다애가 죽기 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가 버림받은 그때에 내가 버렸던 다애를 찾는다면 구멍 난 내 마음도 조금은 치유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그 재생은 시작되고 있었다. 난 알 수 있다. 손끝부터 전해지는 이 따스한 감촉이 이미 말해주고 있으니까. "다행이야. 널 다시 만나서."


지훈 씨는 언젠가부턴가 내 얼굴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현실적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나의 선택은 내가 책임지면 그만이니까. “전 출근해야 해서 나가볼게요.” 짐을 내 방에 던져놓며 말했다. 나 배웅하는 다애와 노려보는 지훈 씨를 뒤로하고 대문을 나서려고 하자 그가 황급히 내 손에 언가를 건넨다. "카드 주는 거예요?" 짜 집주인에게 허락을 얻은 것 같다. 이제 퇴근하면 나를 반겨줄 사람 내 눈앞에 서있.  조금 고개를 숙여 표정을 감추다. 



[ 10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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