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봉 Oct 31. 2020

나를 조종하는 내면의 감시자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아침 등원을 준비하며 아이들에게 버럭 했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은 아이들과 내면에서 감시하는 듯한 감시자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만 좀 해! 이것들아!!!"놀란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둘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며 사과를 했다.     

 

급하게 찐 살이 빠지지 않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을 신랑한테 맡기고 집을 나선다. 집에서 20분 정도 걷다 보면 걷기 좋은 양 채 천 산책로가 나온다. 생각 없이 길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숨이 쉬어진다. 생각 정리도 할 겸 걷는 양재천 산책로는 정말 좋다. 그렇게 밤마다 나가게 되었고, 어느 날은 아들과 함께 걷고, 어떤 날은 혼자 걷는다. 어느 날 혼자 걷고 싶어 나간 양재천에서 아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아들은 집이 아닌 위층 시댁에 올라가 전화를 받았고, 아들과 통화 중에 어머님이 전화를 바꿔달라셨다. 어머님께서는 "애들 잠도 안 재우고,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 다니면 어떻게 하니?, 애들이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잠도 안 자"라고 하신다. 들어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 재울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신랑한테 맡기고 나왔는데 문제 될 건 없었다. 잠이야 아이들이 졸리면 억지로 재우지 않아도 잘 일이었다.

     

어머님의 잔소리를 듣는 순간, 내 안의 내면의 감시자가 건드려져 엄청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양재천 물소리가 세차게 들리는 곳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던 나는 소리를 질러버렸다. 나오는 대로 모두 쏟아붓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분노가 남아 있다. 집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구석진 곳에 가서 나무를 팬다. 그렇게 어릴 적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착한 아이로 커야 했던 상처 받은 내면 아이와 마주한다. “그만해, 그만!!, 내가 알아서 해!! 그만 간섭하라고!!” 어릴 적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오버랩된다. 잔소리하는 어머님께 나는 어릴 적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며 아들 장래까지 망쳐놓더니, 왜 나한테까지 그래?, 오른손 못쓰면 어때? 오른손 못 써도 밥벌이하고 할거 다 했는데...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거야!!”  

    

‘왜 나는 무엇 때문에 할머니의 지독하고 끈질긴 걱정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했을까?’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어릴 적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타고난 신성들을 모조리 죽이며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할머니의 보호 아래 수치심을 온전히 내 것으로 가져왔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보호해 주는 보호자이기도 하셨지만,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나는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였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기회는 오른손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탈당했다.  그러나 내 잘못된 믿음과 신념이 나를 이렇게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다. ‘나는 나다.’ ‘나는 있는 나다.’라는 성경 구절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어른들의 도덕적 기준과 경계 안에 갇혀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존재를 부정당하며 자라온 사이 나의 에고는 더욱 단단해지고 커져버렸다. 한계에 갇혀 세상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두려웠다. 세상은 두려움인데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빛이라는 사실을 잊으며 살아왔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태어난다. 신성 그 자체로 태어나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다 제1 반항기(18개월~36개월)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그때서부터 부모의 경계 안에서 생활했던 아이와 부모는 부딪히게 된다. 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달리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호기심천국이다. 그때서부터 줄다리기가 팽팽해지듯 부모의 잔소리가 많아진다. "이거 하면 안 돼 , 저건 하면 안 돼" 생기지도 않은 일들에 앞서 미리 두려움을 갖고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은 안전한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해보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다칠 거야”라고 하는 건 부모의 앞선 걱정이고, 두려움이다. 막상 다치고 나면 "거봐~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다칠 줄 알았어"라고 하면서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그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비난한다. 그렇게 아이의 신성은 하나씩 빛을 잃어가고 그 자리에 도덕적 기준이 자라며 내면의 감시자가 나를 조종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