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집착을 내려놓으며...
자유로워지고싶다
내가 평소에 갖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집착이 있다. 그건 요리를 하기 전 재료 손질을 하는 것이었다. 특히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손질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 날도 반찬을 하려고 사다 놓은 숙주나물을 다듬는다. 뿌리를 떼어내면 조금 더 깔끔하게 나물무침을 해서 먹을 수 있기에 숙주를 다듬다 시계를 본다. 아이들이 하원 할 시간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기 전 아들과 한 약속이 있었다. 엄마가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들이다. 아이들 하원 시간을 뒤로하고 나물 반찬을 만들기 위해 숙주나물을 계속 다듬는다면 이 날 하원 시간을 기다리는 아들과의 약속이 미뤄진다.
어떻게 할지 계속 망설이다가 시간이 촉박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혼잣말로 "뿌리 좀 있으면 어때? 뿌리가 몸에 더 건강한 거야, 반찬 그까짓 거 좀 지저분하게 만들어지면 어때? 맛이 중요한 거지... 이건 내 집착이구나... 그냥 뿌리 다듬지 말고 반찬 뚝딱 만들고 애들 하원 하러 가야겠다.‘하며 숙주나물 손질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반찬을 뚝딱하고 만드는 데는 5분 남짓이었다. 숙주나물, 콩나물은 뿌리를 다듬으려면 시간이 30분은 걸려 나는 늘 반찬을 만들기 전 손질을 하는데서 지쳐 버린다. 그런 나는 갖고 있던 집착 하나를 놓았을 뿐인데 맛있는 나물 반찬을 뚝딱 만들어내서 저녁 반찬으로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숙주나물이 아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우고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요리를 배웠는데, 요리를 하는데 정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배웠다. 그래서 먹는 건 순식간이지만 만드는데 조금 더 정성을 쏟고 재료 손질에 정성을 쏟았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꼼꼼해야 했고, 재료 중 한 가지 라도 빠지면 요리를 하다 말고 중간에 재료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고는 했다. 그렇게 힘들게 정성을 쏟아 가족들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고 잘 먹으면 그것만큼 배부른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과정보다 재료 손질을 하는데서 이미 진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안 그래도 손이 느린 나는 재료 손질과 요리 시간을 합치면 두 시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취미 삼아 배웠던 요리는 즐거움이었지만 매일 하는 요리는 나에게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리고 주부 9년 차가 된 나. 신혼 때는 곧 잘 만들었던 스페셜 요리와 좋아하던 베이킹도 모두 만사 귀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신혼 때는 신랑을 위해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맛있게 먹는 신랑을 보며 행복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요리를 하느라 정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내게 요리는 시간을 정말 많이 잡아먹는 시간 도둑과 같았다. 정성도 중요하고 맛도 중요한 것이 요리라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 역시 필요한 것이 주부 9단의 살림이 아닐까 싶다. 평소 덜렁거리며 다소 털털하기까지 한 나는 육아도 대충 요리도 대충, 완벽하려고 하기보다 조금 더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누구보다도 갈망하고 있고 느끼고 깨닫고 있으며 점점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