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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긍정 Nov 18. 2020

내가 zoom 화상회의를  불편해하는 다섯 가지 이유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럽게 재택근무를 하면서 zoom을 통한 화상 미팅이 잦아졌습니다.

거듭될수록 오히려 불편한 화상회의. 문제가 뭘까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저는 딱 5가지가 가장 불편했어요.

1. 누가 날 보는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어!
2. 이거 녹화되는 거 아니야??
3. 저 사람 배경이 궁금한데?
4. 얼굴만 딱 보이니까 상황을 잘 모르겠어!!  
5. 지금 말하는 내 얼굴이 실시간으로 보이잖아!!!

1. 넓어진 시야와 누가 날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제 의도와 상관없이 넓어진 시야가 몹시 불편하더군요. 원래 회의를 하면 말하는 사람을 보거나,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거나, 제가 적는 노트를 보거나 아니면 멍하니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화상 미팅은 동시에 여러 명을 볼 수 있더군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면서 처음에는 어딜 봐야 할지 난감했어요. 말하는 사람을 봐야 하는데 사이드에 작게 보이는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있는지, 지금 이 지루한 얘기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듣고 있는지가 동시에 보이기 시작하니 어떤 것에도 집중이 안되더군요.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집요하게 본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걸 모른다는 걸 알고 나서는 회의가 지루할 때에는 부담 없이 여러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있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넓어진 시야에 당황하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들도 날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사람을 만나서 단체로 회의를 하거나 세미나를 듣는 경우에도 누군가가 절 보고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럴 때에는 시선이 느껴질 때 주위를 둘러보고나, 아니면 가끔 그냥 주위를 휙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화상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지금 나와 함께 화상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정면을 보고 있기는 한데, 이 화면 속에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누군가가 날 빤히 보고 있어도 나는 그걸 알 수 없다는 것이 조금 불안하고 이것 때문인지 저는 화상회의가 계속 불편해졌습니다.


2. 나도 모르게 기록되고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는 녹화, 녹음이 워낙 편리하기 때문에 회의 중에 누군가가 전체 음성을 녹음 중 일수도 있고, 회의실에 cctv가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화상 미팅은 그야말로 몰래 녹화하고 캡처하기 너무 좋은 구조더군요. 그래서 요즘 zoom의 보안에 대해서도 얘기가 많이 나오나 봐요. zoom은 회의 개최자가 회의 참석자의 녹화는 막을 수 있는 것 같기는 한데요, 그래도 PC나 모바일에 녹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실시간 녹화하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고, 화면 캡처도 마찬가지도 막을 수 없어서 내 동의 없이 내 회의 의견이 모두 녹화되거나 내 얼굴이 캡처될 수 있는 불안요소가 있더라고요.

 

사실 많은 회의들이 증빙자료를 내기 위해서 중간에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어서 회의 내용이 찍힐 수 있다는 것에는 큰 부담감은 없었는데 지난번 회의 후 받은 회의 보고서에 제 동의 없이 회의 내용 캡처가 있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찍을 때 저도 어떤 것이 찍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화상 미팅은 얼마든지 저 모르게 자연스럽게 녹화하고, 캡처할 수 있더라고요. 게다가 zoom이 아직 익숙하지는 않아서 녹화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요, 얼마 전 설정을 건드리면서 회의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녹화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약간 불안해졌어요. 여차하면 다 녹화되고 있을 수 있는데 더욱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나와 다른 공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사실 이건 제 호기심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회의나 세미나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에 배경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화상 미팅을 시작하고는 나와 같은 주제를 논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에 신경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왜 지금 저런 데서 이런 얘기를 하지? 이런 생각이 들거나 지금 어디에 있길래 이렇게 집중을 못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학생들과 화상회의를 통해 멘토링을 하는데 오후 3시에 고깃집에서 참가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장소는 고깃집이었으나, 주어진 멘토링 시간 동안은 성실하게 참여하긴 했어요. 주제에 집중만 한다면 사실 공간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제 쓸데없는 호기심이 문제였습니다. 얘는 지금 오후 3시에 왜 고깃집에 있는 건가? 점심을 늦게 먹나? 얘가 지금 평소보다 활발한 것 같은데 술을 마신 건가? 고깃집이 3시에도 문을 열던가? 저기 내가 아는 거기 맞나? 이런 쓸데없는 호기심이 들어서 대화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같은 공간에서 얘기를 한다면, 특별히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공간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별다르게 인지할 필요도 없는데 화상회의를 하니까 어떤 주제를 놓고 얘기할 때 간이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모두가 같은 가상 배경을 쓰면 어떨까요? 일단 zoom의 경우에는 기본으로 주어지는 가상 배경이 풀밭, 바다, 우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산만하다고 생각하는 백경입니다. 색도 너무 화려하고 눈이 아프더라고요. 그냥 하얀 바탕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왜 굳이 자연이나 우주를 기본 배경으로 했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부득이하게 가상 배경을 쓸 때에는 따로 저장한 하얀빛의 배경을 사용하고 했었는데요, 요즘에는 그 날의 주제를 간단하게 프레젠테이션으로 만들어서 프레젠테이션 가상 배경을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가상 배경이 아직은 매끄럽지가 않아서 머리카락 부분이 어색하기도 하고, 가상 배경을 쓰면 오히려 지금 어디길래 가상 배경을 쓰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공간은 기억의 필수요소라고 합니다(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작가: 제레드 쿠니 호바스). 기억의 관문인 해마는 장소 세포로 가득 차 있으며, 공간은 서술 기억의 필수적인 측면을 차지한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주제를 두고 얘기만 하면 되는데 배경에 자꾸 관심이 가고 자꾸 다른 사람의 배경 또는 나의 배경에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더라고요.


4. 제한된 비언어적 요소로 인해 낮아지는 상환 판단력과 부족한 친밀감

거래처와 논의할 때 사실 전화로 충분하지만, 굳이 어렵게 찾아가서 만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비언어적 요소! 업무는 전화와 이메일로도 다 진행할 수 있지만, 때로는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만 잘 진행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서로 만나기 위해 어렵게 시간을 내고, 만남의 장소까지 찾아왔다는 정성 때문에 조금씩 양보하게 되거나, 차마 직접 얼굴을 보고는 너무 크게 화를 못 내겠어서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있지만, 누군가를 직접 만나게 되면 비언어적 요인으로 인해 친밀도가 쌓여 소통이 더 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 전화통화로는 무척 쌀쌀맞고 냉정하고 나랑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상상과는 다르게 상큼한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고 싱긋 웃어주는 모습에 마음이 좀 풀리고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되었던 경우도 있었고, 자주 만나다 보니 이 분이 거짓말을 하거나 뭔가를 숨길 때에는 오른손 둘째 손가락을 꼭 쥐는 버릇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의 중에 그분의 모션을 보고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겠다고 미룬 적도 있었습니다. 화상 미팅에서는 상대방의 제한된 부분만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만나는 경우는 전체적인 모습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이 상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지요.

 

화상 미팅은 단지 목소리의 높낮이와 단편적으로 보이는 얼굴의 표정만으로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음질이 좋지 않은 날에는 목소리의 높낮이마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 상대방이 갑자기 카메라를 잠깐 꺼버려 표정을 읽을 기회를 놓치는 일도 생기곤 하지요. 물론 저에게 불리할 때에는 저도 네트워크 또는 장비 핑계를 대면서 마이크를 줄여버리거나 카메라를 꺼서 곤란함을 탈출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요.


5. 내가 회의 중에 내 세세한 표정을 바로바로 볼 수 있다는 끔찍함 

보통 회의 중에는 상대방의 얼굴이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내 얼굴을 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찡그리거나 화를 내는 내 얼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내 의견을 표출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죠. 그러나 화상 미팅은 말하는 내 얼굴도 보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였습니다.


말하다가도 아.. 이런 기분으로 말할 때 내 얼굴이 이랬구나, 아 내가 찡그릴 때는 이런 표정이었네, 아 내가 화가 나면 목도 빨갛게 되는구나, 이 단어를 말할 때는 유난히 내 입모양이 이상하네, 치열이 고르지 않아서 말할 때 입모양이 이상한 거 같은데 교정을 해야 할까? 이런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내 얼굴을 보면서 말한다는 부분이 많이 힘들었었는데, 사실 회의할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다음에 내가 할 말을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의 표정은 자세히 봤던 적도 없고, 어떤 회의가 끝나고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이 세세하게 기억났던 적은 없었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차츰 불안감을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화상 채팅 중에는 가급적 제 얼굴을 안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지금 말하는 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자꾸 궁금해져서 보곤 해요. 그래서 화상회의가 길어지면, 중간에 몰래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집중 집중! 내용에 집중하자! 하고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세상은 빨리 바뀌고, 점점 더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소통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익숙해져야만 하겠지만, 저는 요즘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멀리 있는 사람과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엄청나게 근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업무에 녹아들고, 점점 횟수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불편함과 불안감이 생기더라고요.

 

두어 달 zoom 화상 미팅을 참여해 본 제 경험으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봤는데요, 제 결론은 대면 회의는 소소한 이야기를 붙여가며 회의를 조금 오래 해도 되지만, 화상 회의는 주의력이 떨어지기 아주 쉽고 다른데 더 신경 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핵심 내용만 임팩트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회의는 대충 주제를 정하고 가볍게 만나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화상회의는 오늘의 주제를 정해두고 핵심 안건을 반드시 선정해서 주의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수준에서 짧게 끝내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화상 미팅의 장점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가급적 핵심 안건은 3개 이내, 회의는 최대 20분 이내로 짧게 진행하는 것이 좋겠더라고요(개인적으로 회의는 10분 안에 끝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회의라는 것은 수시로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지더군요)


기술이 가져다준 근사한 소통 방법, 화상 소통.

불편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공유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업무의 중심을 가르는 수요일에 주절주절 하소연해봤어요.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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